<국가처럼 보기> 중간평
<국가처럼 보기> 1,2 부 읽었는데 나란 인간 자체가 워낙 선의든 악의든 의도에 대해선 고려하길 거부하는 사람이라서 서사에 깔린 감정은 익숙하고, 책이 쓰여진 관점을 생각한다면 특별히 주목할만한 주장은 없지만 책이 스스로의 주장을 풀어내는 방식은 확실히 세련된 것 같다.
특히 국가의 가독성 및 통제력이 성장이라는 담론이 현실에서 발현된 사례를 르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이나 레닌의 전위정당론으로 꼽은 건 유비의 정확성을 떠나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현실 사회주의가 정치를 없앴다고 판단한 셸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에서 조직화의 시대에 나오는 해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인용문을 찾는 수고를 나중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스킵.
나는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책의 분류에 따르면) 하이 모더니스트고 효율성과 기계화를 경외하며 많은 영역에서 국가주의자이다. 미적으로도 아름답다 느끼는 대상은 격자로 혹은 수직적으로 잘 배열된 직선적인 것들이다.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통제되고 효율적이고 단순한 일상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다만 본디 성향이 이와 충돌하여 자기 파괴적이 되기도 하지만.) 하여튼 책의 국가에 대한 기본 관점은 나랑 상극이다. 국가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 적일테니, 그저 전근대 국가와 근대 국가만을 구분한 듯 하다. 하지만 해당 책의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은 그러나 은밀하고 매력적이라, 꽤나 커리어에 일관성이 있으신 역자인 전상인 교수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쏠릴 정도이다.
다만 한계적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쓰는 수사를 그대로 차용해 쓰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다양성 찬미랄지, 다원주의적 세력 균형이랄지, 무계획에 기반한 수요 충족이랄지... 그런 점을 당연히 필자도 의식해서 책 곳곳에서 선언적으로 "대규모 자본주의 역시 같은 폐단을 낳는다."라고 자유지상주의자들과의 절연을 단호히 밝히고 있지만, 국가와 같이 사회를 획일화하는 시장을 견제할 방식으로 시민사회만을 언급한 건 무력해 보이긴 한다. 시민 사회도 시장과 비슷한 소비자만을 주체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질수록 시민사회를 시장과 구분되고 또 시장과 국가 모두를 견제할 장으로 보는 게 과연 타당한가란 의문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