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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의 자유를 근대인의 자유와 비교 (1819) - 뱅자맹 콩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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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키비토 2020. 7. 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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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의 경우 필요한 경우 불어를 병기했고 영문은 이해를 돕는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안에 넣어 표기했다. République과 état 그리고 nation 을 콩스탕은 거의 interchangeable 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구분을 위해 불어 원문을 병기했고, 번역어는 국가로 통일하였다.

le peuple은 국가에 관계된 경우 국민國民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공민公民이라고 번역했다. citoyen 의 경우 시민市民이라고 표기했다. 국민국가가 행사하고 독점하는 공권력과 다수의 참여로 공적 성격을 띠게 된  권력은 구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경우 공권력이 아니라 공적인 권력이라고 번역했다.

번역에 문성욱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감사합니당….

앞으로도 좀 더 자연스럽게 고쳐갈 것이지만 일단 블로그에 올려본다.

 

 

고대인의 자유를 근대인의 자유와 비교 (1819)

뱅자맹 콩스탕 Benjamin Constant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두 가지 종류의 자유에 관한 몇 가지, 여전히 충분히 새로운 구별들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들은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못했거나, 아무래도 지나치게 부족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고대의 민족들이 그토록 귀중히 여기며 실천했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의 국민들에게 특별히 소중한 자유입니다. 이 연구는,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흥미로울 것입니다.

 

첫번째, 두 종류의 자유에 관한 혼동은 너무나도 유명한 우리의 혁명기 동안 우리 사이에 여러 해악을 초래했습니다. 프랑스는 무용한 시도에 지쳐갔고, 그 [시도의] 주모자들은 그들의 성공이 보잘것없는 데에 화가 난 나머지 프랑스가 원치 않는 선(善)을 즐기도록 강제하거나, 프랑스가 원하는 것을 두고 프랑스와 다투려 했습니다. 두번째, 우리의 만족스러운 (저는 혁명을 그 과도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다고 하겠습니다. 왜나하면, 저는 그 결과들에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대의 정체의 이점들을 누리게 되었는데, 흥미롭고도 유익한 탐구 주제는 우리에게 약간의 자유와 약간의 휴식을 보장하는 유일한 안식처라 할 이 정부가 어째서 고대의 자유로운 국민들에게는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몇몇의 고대 민족에게서, 예를 들면 스파르타, 혹은 우리의 선조인 갈리아 족에게서 대의 정체의 자취를 밝혀냈다는 주장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틀렸습니다.

 

스파르타의 정체는 군주 귀족정이었지 결코 대의代議정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권력은 제한되었지만 그 제한은 민선장관들les éphores에 의한 것이지, 오늘날 선거가 우리 자유의 수호자들에게 부여하는 임무에 비견할 만한 그런 임무를 띤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선장관들les éphores은 필경, 왕에 의해서 제도화된 후에는, 인민에 의해 지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섯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권한은 정치적인만큼 종교적이었고, 그들은 정부의 운영 자체에, 즉 행정권력에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특권은, 다른 고대 국가에서 거의 모든 민선 관리들의 특권이 그랬듯이, 그저 폭정la tyrannie에 맞선 장애물이 되기는커녕, 종종 그 자체로 용납불가능한 폭정이 되었습니다.

 

갈리아인들의 체제는, 마치 어떤 당파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그 체제와 같이, 신정神政적인 동시에 군사적이었습니다. 사제들은 무제한적 권력을 누렸습니다. 군인 계급, 즉 귀족들도 매우 무도하고 억압적인 특권을 누렸습니다.  인민에게는 그 어떤 권리도 보장도 없었습니다. 로마에서는 호민관이 어느 정도까지는 대의적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호민관les tribuns들은 왕들을 몰아낸 이후, 과두제 지배층l’oligarchie들에 의해 그토록 가혹한 노예제에 복속된 평민들의 기관이었습니다. 귀족l’oligarchie은 어느 세기에나 그래왔죠. 하지만 인민은  상당한 정치적 권리를 직접 행사하였습니다. 그들은 법에 대해 투표하거나, 기소된 귀족을 판정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대의 체제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흔적 밖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의 체제는 근대적 발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고대의 인류가 처한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성격의 제도가 도입되거나 설립될 수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대의 민족들은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거나 이익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회 조직은 그들로 하여금 대의정체가 우리에게 보장하는(assure) 것과는 전혀 다른 자유를 원하게 인도했습니다.

 

오늘 밤 이 연설의 목적은 그 진실을 여러분에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선 오늘날의 영국인, 프랑스인, 그리고 미국인에게 자유란 단어는 무엇을 뜻하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 오직 법에 의거하며, 한 명 또는 복수의 개인들의 결정에 의거하여 체포 구금 사형선고를 비롯한 어떤 종류의 학대도 당하지 않을 권리.
  • 사상을 표현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실행하며, 자신의 재산을 처분 심지어는 낭비할 권리.
  • 허락을 구함 없이 그리고 동기나 방식에 대한 해명 없이 오갈 수 있는 권리
  • 자신의 이해를 두고 교섭하기 위해서든, 본인 및 동료들이 선호하는 신앙을 선전하기 위해서든, 혹은 단지 자신의 성향이나 변덕에 맞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든, 타인과 결사할 권리
  • 전부 혹은 일부의 공무원을 선출함으로써, 혹은 당국이 다소간 고려해야 할 의무를 지닌 대의, 청원, 요구 등의 행위를 통해 정부 운영에 영향을 행사할 권리.

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턴 이 자유를 고대인의 자유와 비교해 보십시오.

 

고대인들의 자유는 집단적으로, 그러나 직접적으로 주권 전반의La souveraineté toute entière 여러 부분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습니다.

  • 광장la place publique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것,
  • 외국과 동맹 조약을 체결하는 것,
  • 법에 투표하는 것,
  • 판결을 언도하는 것,
  • 관리들magistrates의 회계, 행동, 운영la gestion(stewardship)을 검토하는 것,
  • 그들(관리들)을 모든 인민 앞에 소환하는 것,
  • 그들(관리들)을 고발하거나 단죄하거나 사면하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이것을 자유라고 부르는 동시에, 집단에 대한 개인의 완전한 예속을 이러한 집단적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 근대인의 자유에 속하는 권한(jouissances)들 가운데 어떤 것도 여러분은 저들(고대인들)에게서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적 행동들은 엄격한 감시 하에 놓였습니다.  의견의 측면, 직업의 측면, 특히 종교의 측면에서 그 어떤 것도 개인의 독립성에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종교culte 선택을 할 권한을 faculté (right)우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권리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만, 고대인들에게는 범죄이자 신성모독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유용해 보이는 것들에 사회체의 권위가 개입하여개인의 의지를 가로막았습니다.  스파르타인들 사이에서 테르판드로스Terpandre는 민선 장관들을 거슬리게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리라에 현조차 더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가정적인 관계에서도 당국은 역시 개입했습니다. 젊은 스파르타인은 자신의 새 신부마저 자유롭게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로마에서는 감찰관Les censurs들이 가정 내부에까지 감시의 눈길을 뻗었습니다. 법들은

 

따라서 고대인들에게 개인은 언제나 거의 공적 업무에 있어서는 주권자이나, 모든 사적 관계에 있어서는 노예였습니다. 시민으로서 그는 전쟁과 평화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사적 개인으로서 그는 그의 모든 움직임에 있어 속박 되었고, 감시 당했으며, 억압 당했습니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그는 관리들 magistrates과 상급자들을 심문하고, 면직시키며, 단죄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고, 사형시킵니다; 집단에 종속된 자로서 그는 그가 부분으로 속한 전체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지위를 빼앗기고, 특권을 박탈당하고, 추방 당하고, 사형 당할 수 있습니다. 근대의 경우는 반대로, 사적 생활에서 독립적인 개인은 심지어 가장 자유로운 국가에서조차 외견상으로만 인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주권은 제한적이며, 거의 항상 유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가 정해진, 실상 드문 때에, 그마저도 여전히 대비책과 장애물에 둘러싸인 채로, 이 주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주권을 양도abdiquer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여러분, 저는 제기될 반론에 미리 답하기 위해 여기서 잠시 멈춰야겠습니다. 고대에도 개인의 존재가 집단에 제가 묘사한 것만큼 완전하게는 종속되지 않은 국가une république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국가로, 짐작하시다시피 저는 아테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뒤에서 이 점을 재론할 것인데,이 점의 진실을 인정하면서, 나중에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아테네가 고대의 모든 국가들 중에서 가장 근대적 국가들을 닮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모든 곳에선 사회의 사법권jurisdiciton이 무제한적이었습니다. 콩도르세가 말했듯 고대인들에게는 개인권에 대한 아무런 관념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자면, 자신의 기어와 톱니바퀴가 법에 의해 규제받는 기계와 같았던 것이죠. 동일한 예속이 로마 공화국의 위대한 세기들을 특징지었습니다: 개인은 국가la nation 속에서, 시민le citoyen은 도시la cité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대인과 우리 사이 본질적 차이의 근원으로 거슬러 보고자 합니다.

 

모든 고대의 국가들les républiques은 지리적으로 작았습니다.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중대한 고대의 국가도 규모에 있어서는 근대의 가장 작은 국가의des états 규모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보잘것없는 규모가 이 국가들의 정신을 불가피하게 호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국민peuple은 늘 자신의 이웃들을 계속 공격하든지, 그들에게 공격받든지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필연적으로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 싸우거나 서로 협박했습니다. 정복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정복당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무기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고대의 자유국이 그들의 안전과 독립 그리고 보전을 위해 치러야 할 값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변함없는 관심사였고, 거의 영원한 업이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존재 방식의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결과로서, 이 모든 국가들은 노예를 갖고 있었습니다. 수작업이나 (몇몇 국가의 경우) 상업까지도 손에 쇠고랑을 찬 이들에게 맡겨졌죠.

 

근대 세계는 우리에게 완전히 반대되는 풍경을 펼쳐 보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작은 국가도 스파르타 혹은 다섯 세기 동안의 로마와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유럽이 여러 국가로 분할되어 있다고는 해도, 계몽의 진보 덕택에 이는 실제적이기보다 외견상의 분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각자가 태생적으로 다른 가족의 적이며, 단절된 가족을 구성했던 반면, 현재는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속한 사회적 조직체가 다름에도, 동일한 본성nature을 지닌 인간 대중une masse d’hommes이 있습니다. 이 대중은 야만인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합니다. 이 대중은 전쟁이 자신들에게 지울 부담을 잘 알만큼 충분히 계몽되었습니다. 이 대중은 하나같이 평화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또 하나의 차이를 초래합니다. 전쟁이 상업에 선행합니다. 왜냐하면 전쟁과 상업은 그저 동일한 목적, 즉 소유하고 싶은 걸 소유한다는 목적을 위한 두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업이란 소유를 갈망하는 자가 소유자의 힘에 바치는 경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더 이상 폭력에 의해서 획득하려 하지 않고, 서로의 합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항상 가장 힘 센 사람이라면이 상업이란 관념을 결코 떠올리지못할 테죠. 전쟁, 즉, 우리의 힘을 다른 이의 힘에 대항해 사용하는 것이 자신을 온갖 저항과 온갖 실패에 맞닥뜨리게 한다는 사실이 경험에 의해 입증되었기 때문에 그는 상업을, 즉 자기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바에 대하여 타인의 이해를 합치시키는 보다 유하고 보다 확실한 방법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충동이고, 상업은 계산입니다; 따라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라도 상업이 전쟁을 대체하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고대에는 상업 민족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있었으나, 보편적으로 보면 일종의 예외였죠. 저는 강연에서 상업 발전을 저해했던 모든 장애물들을 열거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들도 저만큼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단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고대의 항해사들은 나침반을 몰랐기때문에 되도록이면 항상 연안沿岸을 시야에서 잃어버리지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브롤터 해협-그들의 헤라클레스의 을 건너는 것은 가장 대담한 사업이라 여겨졌습니다. 가장 유능한 항해사들인 페니키아인들이나 카르타고인들은 매우 늦게서야 그 위험을 감수하였고, 오랫동안 아무도 그들의 예를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곧 다룰 아테네에서는 . 이러한 예는 그들이 장거리 항해를 얼마나 위험하게 여겼는지 알려줍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길어질 여담을 할 시간이 있었다면 저는 고대 상업 민족의 풍습, 습관, 다른 민족과의 교역 방식의 세부를 들어서, 그들의 상업은, 말하자면, 그 시대의 정신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전쟁과 적대성의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음을 여러분께 증명해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상업은 다행스러운 사고un accident였는데, 오늘날에는 정상적인 상태이자, 유일한 목적이고, 보편적인 경향이고, 국가들의 진정한 삶이지요. 이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전쟁은 점점 비효율적인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은 감수해봤자 더 이상, 개인들과 국가들에게, 평화로운 작업이나 질서있는 교환의 결과와 견줄만한 이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성공적인 전쟁은 노예, 공물, 영토를 통해 공적 사적 부를 증대시켰습니다. 근대인의 경우, 전쟁은 성공적이라 할 지라도, 가치를 창출하기보단 필연적으로 손해를 초래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업과 종교, 인류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진보 덕택에, 유럽 국가에는 노예가 더 이상 없습니다. 모든 직업을 수행하고 사회의 모든 필요를 책임지는 것은 자유인들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차이들의 불가피한 결과가 무엇일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1) 한 국가의 규모가 클수록, 각 개인에게 할당된 정치적 중요성은 작아집니다. 로마나 스파르타의 가장 보잘것없는 공민le républicain도 나름의 힘이 있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평범한 시민citoyen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개인적 영향력이란 정부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회적 의지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2) 노예제의 폐지는 자유민으로부터 그들이 노예가 거의 대부분의 일을 할 때 누리곤 했던 여가 시간을 박탈했습니다. 아테네의 노예 인구가 없었다면, 20,000의 아테네인들은 공공 광장에 모여 매일 논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상업은 인간의 삶에 있어, 전쟁처럼, 휴지기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고대의 자유민은, 만약 끊임없는 정치적 권리의 행사, 매일같은 국정 논의와 불화, 공작, 정파의 형성과 운동 등의 불가피한 소란, 굳이 말하건대 강제된 막간remplissage 활동이 그들의 삶에 활력이 되어주지 않았더라면, 자주 비참한 무위無爲에 시들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투자, 자신의 사업, 자신이 획득하거나 기대하는 이득에 몰두하고 있으며 오로지 가끔, 최소한으로만 그로부터 주의를 돌리고 싶어하는 근대 국가에서 저와 같은 활동들은 동요와 피로밖에 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4) 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독립을 열렬히 사랑하게끔 합니다. 상업은 권위로부터의 어떤 간섭 없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킵니다. 이 간섭은 거의 항상, 아니 제가 왜 ‘거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간섭은 ‘항상’ 곤란이자 골칫거리입니다. 집단적 권력이 사적 투자에 간섭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투자자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정부가 우리의 사업을 해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더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못합니다.

 

저는 이제 아테네로 돌아가 보도록 하죠: 이것은 제 주장들 몇 가지를 반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은 그것들이 모두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아테네는, 앞서 제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의 모든 국가들 중 가장 상업의 비중이 큰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는 스파르타나 로마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개인의 자유를 시민들citoyens에게 허용했습니다. 제가 만약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아테네의 상업이 근대인과 고대인 사이의 몇 가지 차이들을 없앴음을 알려드렸을 겁니다. 아테네 상인의 정신은 현대 상인의 정신과 비슷했습니다. 크세노폰Xenophon이 우리에게 알려주길,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자본을 본토인 아티카에서 에게해 군도群島로 옮겼습니다. 상업이 그들에게 순환을 창출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소크라테스Isocrates의 글에는 그들이 환어음을 사용했단 흔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관습mœurs이 우리의 것과 얼마나 비슷한지 보십시오. 저는 아테네인들이 그들의 아내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에 대해 크세노폰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가정이 평화와 마땅한 우애로 다스려질 때, 만족한 남편들은 자연의 폭정이 초래한 부인의 너무나도 연약한 본성을 고려하였고, 정념의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대해 눈을 감아주었으며, 첫번째 약점을 용서했고, 두번째 약점은 잊었단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이방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거래나 작업을 하는 누구나에게 그 시민권을 확대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개인의 독립에 대한 과도한 사랑은 놀랄 만한 것입니다.

 

한 철학자에 따르면, 라케다이몬*에서는, 시민들les citroyens은 관리magistrate가 호출하면 즉시 왔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인이라면 자신이 관리magistrate에게 의존하고 있다 여겨지는 것을 절망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테네에서도 존재했던, 고대 국가들의 성격을 결정하는 몇몇의 다른 특징들 – 노예 인구가 있었다는 것과, 영토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특징들 – 때문에 우리는 아테네에서도 분명히 고대적 형태의 자유의 유물을 찾아보게 됩니다. 사람들le peuple은 입법하고, 관리들의 행동을 조사하며, 페리클레스를 소환하여 그의 행정업무를 보고하게 하며, 아르기누사이Arginusae  해전을 지휘했던 장관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동시에, 도편추방제- 당시엔 합법적이었고 모든  입법가들의 자랑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불쾌한 추행으로 보이며 또 그렇게 보이는 것이 마땅한 제도-가 증명하듯, 현대 유럽의 어느 국가에 속한 사람과 비교하든 아테네인 개인은 여전히 사회체의 패권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부터 우리가 더 이상 고대인들이 가졌던, 집단적 권력에 끊임없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으로 구성된 자유를 향유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우리의 자유는 사적 독립을 평화롭게 향유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국가 주권에 있어 고대인 각자가 누리던 몫은 오늘날처럼 추상적인 가정une supposition abstraite이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의지가 주권에 실직적인 영향력을 지녔고, 그 의지의 행사는 매번 사용될 때마다 생기 넘치는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권리와 국가 행정에 있어서 자신의 몫을 보존하기 위해 그렇게 기꺼이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그의 투표의 중대성을 느꼈고, 이런 개인의 중요성이 그의 희생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중La multitude속에서 사라져버려서, 개인은 그가 행사하는 영향력을 거의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의 의지는 전체 속에서 절대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며, 무엇에서도 그는 자기 눈으로 자신의 기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근대인의 정치적 권리 행사는 이제 고대인이 그것으로부터 찾았던 이득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주지 못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의 진보와 점진적인 상업과 사람들 사이 소통의 증가가 개인의 행복을 크게 증가시켰고 다채롭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고대인들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우리의 개별적 독립에 부여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독립을 희생할 때는, 더 큰 것을 위해 더 작은 것을 희생한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더 작은 것을 위해 더 큰 것을 희생하게 됩니다. 고대인들의 목적은 시민들 사이에서 한 국가의 사회적 힘을 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었죠. 근대인들의 목적은 그들의 사적 이익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유’는 그러한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것이죠.

 

제가 초반에 말씀드렸듯,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길고 격렬한 혁명 와중에,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해서, 수많은 해를 끼쳐왔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그들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들의 잘못 자체는 용납됩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 누군가가 아름다운 고전을 읽거나, 위인들의 행동을 회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말하자면, 어떠한 근대적인 것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선 말이죠.우리가 그러한 기억들과 마주할 때면, 마치 말하자면 우리의 본성보다 더 오래된 본성의 낡은 요소들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사실 인간의 기능들이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하지만 그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그만한 기운 및 위엄으로써 그렇게 드넓은 행로 속에 펼쳐지던 옛시절을 아쉬워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아쉬움에 빠져버리면, 우리는 우리가 아쉬워하는 그것을 모방하길 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정서는 특히 우리가,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억압적인,원칙에 있어 불합리하고 행동에 있어서 가증스러운 정부 아래 살고 있을 때,독단적 판단을 동력으로 삼고 인류의 격하를 목적으로 삼는 정부 아래 살고 있을 때 특히 가장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그들의 아집, 무능력, 전복의 희생양이자 목격자였음을 우리가 잊어버릴 수라도 있다는듯이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앞에서 이런 정부들을 감히 찬양합니다. 우리의 개혁가들의 목적은 고귀했고 너그러웠습니다. 우리 중 누가 과연 그들이 개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의 첫번째 인도자들이 몇 가지 과오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그들의 기억을 더럽히거나 인류의 벗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전해준 의견들을 부인하는 것임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 혁명의 첫번째 안내인들 -은 그들의 여러 이론을 이 천년 동안 인류의 기질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었던지 짐작도 하지 못했던 두 철학자의 저작에서 빌려왔습니다. 저는 아마 언젠가 그들 중 더 저명한 이, 장-자크 루소의 체계를 검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가장 순수한 사랑으로 움직인 이 탁월한 천재가 그러나 다른 세기에 속한 사회적 권력, 집단적 주권의 일부를 현대에 이식하는 바람에 여러 폭정에 무시무시한 핑계거리를 제공해주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밝혀 마땅한 이 착오를 드러냄에 있어 저의 논박은 신중할 것이고, 저의 비난은 존경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 위인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우연히 겉으로나마 그 자들과 딱 한 지점 에서라도 동의하는 듯 보인다면, 저는 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단 한 가지 부분적인 문제에 있어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 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저는 제 모든 힘을 바쳐서 그러한 자칭 동맹자들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진실의 이해利害는 경이로운 재능의 영광이나 거대한 명성의권위가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존경심에 우선합니다. 그리고, 여하튼, 여러분은 제가 반대하고자하는 오류를 만든 데 주요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루소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책임은 오히려 루소보다 덜 유창했으나 그에 못지 않게 소박했고, 무엇보다 백 배 이상 극단적이었던 그의 후계자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 마블리 신부Abbé de Mably, 고대 자유의 강령들에 따라 국가가 주권을 누릴 수 있도록 시민들은 철저하게 종속되어야 한다고 하는 민중le peuple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개인이 노예화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체제의 대표자로 간주될 만합니다.

 

마블리 신부 는, 루소나 다른 많은 이들처럼, 사회체의 권력이 곧 자유라고 생각했단 점에서 고대인들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개탄할 만한 독립성을 지닌 인간 존재의 저 거추장스러운 부분에 대해 사회체의활동 범위를 넓히는 수단이라면 어떤 것이든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모든 작업에서 그는 법이 오직 행동에만 적용될 수 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법이 사상은 물론 순식간의 인상들에까지도 손을 뻗치기를,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하나 없이 법이 인간을 추적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다른 민족에게서든 어떤 억압적 조치를 발견하기만 하면 그는 그것을 발견이라고 생각했고, 하나의 모델로서 제시했습니다. 그는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적을 혐오하듯, 개인의 자유를 혐오했습니다; 또 그는 역사속에서 그것(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결핍한 경우를 마주칠 경우, 심지어 그 국가가 정치적 자유를 결여할 지라도, 그는 그것을 마지않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이집트인들에게 도취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에게서는 법이 모든 것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소한 휴식이나 필요까지도 모든 것은 입법가의 지배에 구속되었습니다; 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특정한 의무로 채워졌고, 심지어 사랑까지도 높이 평가되는 중재의 지배를 받아야했고, 부부 침대의 커튼을 열고 닫는 것도 법이었습니다.

 

이 철학자는 스파르타의 공화정 형태와 개인의 노예화란 조합에 더욱 흥분했습니다. 그에게 저 거대한 수도원은 완벽한 공화국의 이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아테네를 깊이 경멸했고, 어떤 대영주grand segneur 아카데미 회원이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대해 했던 말을 그는 기꺼이 그리스에서 첫째가는 이 국가에 대해 말했을 것입니다. “이 무슨 끔찍스러운 전제정인가! 모두가 자기 원하는 대로 하다니!” 덧붙이자면, 이 대영주는 삼십 년 전의 아카데미를 두고 말했던 것입니다.

 

몽테스키외는 성마른 사람이 아니었기에 보다 관찰력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똑같은 오류를 그대로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묘사한 그 차이에 놀랐으나 그 실제 이유를 탐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민중의 통치하에 살았던 그리스 정치인들은 덕의 힘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힘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생산, 상업, 회계, 부, 그리고 심지어 사치에 관해서만 말해주죠. 몽테스키외는 이 차이가 공화제와 군주제의 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고대의 정신과 근대의 정신의 상반성으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공화국의 시민이나 군주제의 신민은 모두 이익을 원하고, 현대의 사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익을 원치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가 해방되기 이전, 근대에서 가장 자유를 신경 쓴 사람들은 바로 삶에서 각종 이익을 신경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자유를 중시한 까닭은 자유가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궁핍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로 하여금 궁핍을 견디게 하려면 그들을 노예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노예를 스파르타인으로 만드는 것이 자유를 스파르타인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사건의 흐름들이 우리 혁명의 선두로 이끌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받았던 교육으로 인해불가피하게도, 거짓이 되고만 고대의 의견, 제가 언급한 철학자들이 찬양한 그 의견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루소의 형이상학 중에는 갑작스럽게 번개처럼 지고한 진실들 그리고 매혹적인 웅변이 담긴 대목들이 있습니다. Mably에게는 금욕, 불관용, 모든 인간 정념에 대한 혐오, 그리고 이 정념을 모두 복속시키려는 열망, 그리고 법의 권능에 대한 과장된 원칙들, 그가 권장한 것과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 사이의 차이, 부 혹은 심지어 소유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당장의 승리에 취해있던 사람들에게 유혹적일 수 밖에 없었고, 합법적 권력을 갖게 된 이 사람들은 그 권력을 모든 것에 적용하려는 생각에 흡족해했습니다. 이들에게 이 문제에 있어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이 사람들의 전제정을 규탄하면서 법의 문구를 공리화했던 두 작가의 권위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공적인 권력la force publique을 저 작가들의 가르침에 따라 옛날 자유로운 나라들에서 행사되었다는 바로 그 형태로 행사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집단 의지la volonté collective앞에 양도되어야 하고, 개인권에 대한 모든 제한이 사회적 권력pouvoir social에 참여함으로써 충분히 보상되리라 믿었죠.

 

여러분들은 무슨 일이 그 다음 벌어졌는지 아실 겁니다. 자유로운 제도들은, 시대의 정신에 대한 앎에 기초했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원된 고대의 조직edifice은,우리의 존경을 자아내는 여러 수고와 여러 영웅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붕괴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권력이 모든 방향에서 개인적 독립을 훼손했음에도, 개인적 독립의 욕구는 파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추상적 속에 관념적인 한 몫을 얻는 데 그것이 시키는 대로 희생할 만한 값어치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유의 법은 폭군의 멍에가 가혹한 것보다 천 배는 더 엄격하다’ – 사람들은 루소의 이 말을 반복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국민은 그런 엄격한 법을 원하지 않았고, 피곤해진 나머지 때로는 폭군의 멍에가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은 이제 사람들의 독단은 최악의 법보다도 더 나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법 역시도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들이 저의 의견에 불어넣는 확신을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데 성공했다면, 여러분은 저와 함께 다음 원칙들의 진실됨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i) 개인의 독립은 근대인들의 첫번째 욕구입니다; 따라서 (ii) 정치적 자유 설립을 목적으로 그들에게 독립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고로, (iii) 과도한 찬양을 받는, 고대 공화국에서개인의 자유를 저해한 수많은 제도들 중 단 하나도 근대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첫눈에 보기에 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정부들은 고대 국가들les républiques 모방하려는 기미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의 제도에 대한 애호가 아무리 사소할 지라도, 이 정부들에 공화국적républicaines 어떤 관행들에 대한 무어라 할 수 없는 애정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관행들이 하필 망명과 추방 혹은 재산의 몰수를 허용하는 바로 그 관행들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1802년, 특별 법정에 대한 한 법안에서 프랑스에 그리스식 도편추방제를 도입하는 조항이 끼어들어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달변가들이 결국 철회된 이 조항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아테네의 자유에 대해, 그리고 그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서 개인이 치러야 할 희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까! 마찬가지로, 그것보다 더 최근에, 불안한 당국이 소심하게 선거를 조작하려고 했을 때, 전혀 공화주의적인 데가 없는 한 신문은로마의 감찰관 제도를 부활시켜 모든 위험한 후보자들을 실격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렇게 과찬받는 두 제도에 대해 몇 마디를 하는 것이 무익한 여담에 빠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는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 대한 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신뢰와 지지층, 영광으로 무장한 한 개인의 영향력이 흔히 대중의 권력을 흔들어 놓던 작은 도시국가에서라면 , 도편추방제가 유용하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서는 개인들의 권리는 사회에 의해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앞서 지적했듯이, 어느 한 개인의 영향력은 여럿의 같거나 더 큰 영향력에 의해 극히 미미해진 나머지, 그것을 억압적인 방식으로 없애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며 부당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한 시민을 망명시킬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시민이 일반 법원에서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망명이란 처벌을 명백하게 부여하는 법에 의거해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만을 제외하면요. 그 어느 누구도 어느 한 시민을 그의 조국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소유주로부터 그의 소유물을, 상인으로부터 그의 거래를, 남편으로부터 그의 아내를, 아버지로부터 그의 자식들을, 작가로부터 그의 학구적인 명상을, 노인으로부터 그의 익숙한 삶의 방식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요.

 

모든 정치적 망명은 정치적 학대입니다. 공공선을 위한다는 이유로 의회에 의해 선고된 그 어떤 망명도 의회가 법을 지키고 형식을 준수하며 안전장치들을 유지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공공선에 반해 저지르는 범죄에 불과합니다.

 

로마의 감찰관은 자유재량권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도편추방제와 유사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가난으로 인해 극히 소박한 풍습을 지니고 있으며 같은 도시에 거주하고, 국정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그 어떤 상업이나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항시적으로 공권력 행사의 관람자이거나 심판자가 되었던 공화국에서 검열은 한편 더욱 큰 영향력을 누릴 수 있었고, 다른 한편 감찰관들의 독단적인 힘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도덕적 감시에 의해서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공화국의 크기, 사회 관계의 복잡성, 그리고 문명의 개선이 이 제도로부터 그것의 기반과 제한이 되던 것을 빼앗자마자, 감찰관은 로마에서조차 변질되었습니다. 감찰관은 좋은 관습mœurs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습mœurs의 간소함이 감찰관에게 힘과 효율성을 부여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감찰관처럼 독단적인 제도는 비효율적이고 참아줄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사회 상태에서는, 관습은 미세하고, 변동이 심하며, 포착하기 어려운 뉘앙스들로 만들어져 있어서, 우리가 더 확실하게 규정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천 개의 방식으로 왜곡되고 말 정도입니다. 그들mœurs에게 우리가 가닿거나, 그들을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여론을 통해서입니다. 여론이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 역시도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여론은 그것에 좀 더 정밀성을 부여할 목적인 그 어떤 법적 권위에도 저항할 것입니다. 만약 근대의 정부가, 로마의 감찰관들처럼, 시민들을 임의로 엄벌에 처한다면 국민 전체가 당국의 결정을 승인하길 거절하면서 이 조치에 대항할 것입니다.

 

제가 감찰관 제도를 근대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더욱 자주 그리고 훨씬 더 과장되게 고대가 전거典據로 제시되고는 하는 다른 많은 사회제도에 역시 적용됩니다. 교육을 예로 들어봅시다: 정부가 젊은이들을 정부의 구미에 맞추어 제어할 필요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며, 그 이론을 주장하려고 얼마나 많은 박식한 인용들을 끌어다 대는지요! 페르시아인, 이집트인, 갈리아족, 그리스인, 이탈리아인들이 차례로 제시되었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독재자에게 종속된 페르시아인도 아니고, 사제들의 통제 아래 있는 이집트인도 아니며, 혹은 그들의 드루이드druides에게 희생당할 수 있는 갈리아 족도 아닙니다. 심지어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처럼 사회적 권력을 할당받는 것으로 개인적인 종속 상태를 위로 받지도 않죠.

 

우리는 근대인입니다. 우리는 또 자연의 뜻에 따라 우리의 애정을 받게 된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능력들이 개발되어가도록 보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애정은 생생한 만큼 계몽된 것이며  마치 여행자들이 당국으로부터 대로(大路)를 선사받지만, 정작 자신이 무슨 길을 따라갈 지는 당국의 인도를 받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의 애정이 정부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 역시 그저 일반적인 교육 수단들을 모아서 제공받는 것뿐입니다.

종교 역시 지난 세기들의 기억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몇몇의 용감한 통일체 신조 지지자들[이 형용사는 반어적인 의미입니다]께서는 우리에게 이방신異邦神을 적대하는 고대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다신교를 교란한 죄로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아테네 인들의 예로써 가톨릭 교회의 권리를 지지합니다. 혹은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들의 신앙에 충성스럽기를 바랐던 아우구스투스의 예를 드는데, 바로 그 때문에, 얼마 뒤, 초기 기독교인들이 야수의 먹이로 던져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몇몇 고대 기억을 이처럼 숭배하는 것에 저항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근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근대에 맞춰진 자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군주정 하에 살기 때문에, 저는 군주정들이 고대 공화정들로부터 억압의 방식을 빌려오지 않길 겸허하게 요청드립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진정한 근대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정치적 자유는 그 보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치적 자유 역시 꼭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고대인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모든 개인적 자유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포기하라고 한다면, 그건 다름 아니라 근대인들을 정치적 자유로부터 가장 확실히 분리시키는 길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분리는 우리로부터 곧장 개인적 자유도 앗아갑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다시피, 제 관찰은 추호도 정치적 자유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앞에 보인 사실들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고대인들은 자유롭다. 우리는 고대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예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은 몇 개의 요소들, 그들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에 부합하는 유일한 요소들이라는 그것들로만 새로운 사회 상태를 건설하고 싶어합니다. 그 요소들은 사람을 겁먹게 하는 편견이고, 부패시키는 이기주의이며, 바보로 만드는 경망스러움이자, 타락시키는 상스러운 쾌락, 그들에게 명령할 독재주의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더 능숙하게 전제정에 봉사할 실제적 지식과 정확한 과학이 있지요.

 

인류가 40 세기 동안 여러 가지 도덕적이고 물리적인 수단들을 쟁취한 결과라고 하기에 이것은 너무 이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대와 근대의 차이에서 저는 다른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보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되며, 권리(jouissance)를 확장해야 합니다. 저는 정치적 자유를 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시민적 자유와 함께 다른 형태의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불법적인 권력을 참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당한 기반을 갖고 있는 정부라면 개인들에 대해 독단적 우위를 누릴 권리를 예전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항상 갖고 있던 권리들, 즉 법을 승인할 권리, 우리의 이해관계를 고심할 권리, 우리가 구성원인 사회체의 일부가 될 권리 등 저 영원한 관리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새로운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과 세기가 지남에 따라 일어난 변화가 정부에게 개인들의 관습, 정서, 독립을 더욱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욱 신중을 기해 이런 것들을 다뤄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권력은 자신의 행동을 이런 방식으로 제한해야 할 엄중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정부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마치 근대에 부합하는 자유가 고대에 부합했던 자유와 다르듯이, 에게 가능했던 독재는 더 이상 우리에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덜 정치적인 자유에 집중합니다. 또한 그것에 덜 열정적이죠. 우리는 따라서 때로 과하게 그리고 항상 잘못되게 정치적 자유가 우리에게 보장하는 것들을 등한시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대인들보다 훨씬 개인의 자유를 신경쓰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공격으로부터 더욱 잘 그리고 끈질기게 지킬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대인에겐 없었던 수단들이 있습니다.

 

상업은 우리의 존재에 행사되는 독단적인 권력이 과거에 비해 더욱 억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투자 활동이 다양해질수록, 독단적인 권력은 그것들에 가닿기 위해서 더욱 증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업은 또한 독단적인 권력 행사를 쉽게 회피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왜냐하면 그것은 거의 그것을 붙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자산의 유형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상업은 자산에게 ‘순환’이라는 새로운 특징을 부여합니다. 순환 없이는 자산은 용익권l’usufruit에 불과합니다. 정권은 향유를 가로막음으로써 언제나 용익권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환은 사회적 권력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보이지 않지만 거역할 수도 없는 장애물을 만듭니다.

 

이러한 상업의 효과는 더욱 확장됩니다: 그것은 개인들을 해방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신용을 생성함으로서 그것은 권력이 그것에 의존하게끔 만듭니다.  ‘돈은’ 어느 프랑스의 작가가 말하길, ‘독재정의 가장 위험한 무기임과 동시에 그것의 가장 강력한 저지장치이다; 신용은 여론에 달려있으며, 힘은 무용하다; 돈은 숨거나 도주한다; 모든 국가의 작동이 중단된다.’ 신용은 고대인들에게는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정부는 개인들보다 강했고, 반면 우리 시대에는 개인들이 정치적 권력보다 강하죠. 부는 어느 순간에나 가장 편리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가장 유용하며, 따라서 가장 잘 준수되며 가장 현실적인 권력입니다. 권력은 위협하지만 부는 사례합니다. 우리는 권력을 속여서 교묘하게 피합니다. 하지만 부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섬겨야 합니다; 따라서 부는 이길 수 밖에 없죠.

 

이와 같은 인과의 연쇄가 개인적 존재는 정치적 존재에 덜 얽매어 있단 결과를 도출합니다. 개인들은 그들의 보물을 먼 곳으로 운반합니다. 그들은 자신과 함께 사적 생활의 이익을 다 데려가죠. 상업은 국민들에게 거의 비슷한 풍습과습관들을 부여하면서 국가들을 서로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각국의 원수들les chefs 이야 서로를 적이라 여길 수 있어도, 사람들은 서로를 동포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권력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에겐 자유가 필요하고, 우린 그것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가 고대의 자유와 너무 다른 나머지, 그것은 고대의 자유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고대에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정치적 자유를 행사하는 데 바치면 바칠수록 그는 스스로를 더욱 자유로운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종류의 자유에 관해 말하자면, 더 많은 시간을 정치적 자유 행사가 우리에게 사익을 위한 시간을 남겨줄수록, 자유는 우리에게 더욱 소중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의정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한 국민이 몇 명의 개인들에게 스스로 하지 못하거나 하길 원치 않는 일을 맡기는 제도에 불과합니다. 가난한 자나 자신의 일을 돌보죠. 부유한 자는 집사를 고용합니다. 이것은 고대 국가의 이야기이자 근대 국가의 이야기입니다. 대의정은 자신의 이익이 보호되길 원하지만 그들 스스로 계속 지키기엔 시간이 없는 대중이 특정 수의 사람들에게 부여한 권한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집사를 고용한 그 부자는 가까이서 엄밀하게 그들이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지 살필 것입니다. 그들이 태만하거나, 부패하거나, 혹은 무능하지 않은지요. 만약 그들이 현명하다면, 지주는 집사들이 위임받아 수행하기로 한 일들에 관해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의 지시가 얼마나 잘 수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국민들은 그들에게 적절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대의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대표자들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하며 우리에게 만약 그들이 신뢰를 져버린다면 그들을 배제할 수 있고 그들이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남겨둬야 합니다.

 

근대의 자유와 고대의 자유가 상이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 역시 다릅니다. 고대의 자유에게 위협이란 한 사람이, 오로지 그들의 사회적 권력만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개인의 자유와 혜택을 저평가할 수 있단 것이었습니다. 근대인의 자유에게 위협이란 바로 우리가, 사적 독립과 사익 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적 권력을 나누어 갖는 우리의 권리를 너무도 쉽게 내어줄 수 있단 것입니다.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우리가 바로 그것을 하길 종용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복종과 지불이란 고충을 제외한 그 어떤 문제들로부터든 면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무엇을 위해 근본적으로  여러분은 노력합니까? 여러분의 노동의 동력이 뭐예요? 여러분의 희망의 목적이 무엇이 무엇인가요?  행복 아닙니까?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당신에게 행복을 드리겠습니다.”

 

아니오! 우리는 그것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려는 그들의 섬세한 염려는 감동적이지만, 하지만 우리는 그 권력들에게 그들의 한계 안에 남으라 요구해야 합니다. 그들을 정의에 국한시키고, 우리가 행복을 신경써야 합니다. 만약 권리(jouissances)가 안전의 보장(garanties)과 분리된다면, 우리가 권리를 누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정치적 자유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그런 보장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집을 모래에 짓으며 자신은 일층에서만 살 거라고 신경을 쓰지 않는 우둔함과 비슷할 것입니다.

 

어쨌든, 그 어떤 인류의 유일한 목적이 행복이란 것은 정녕 사실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행로란 비좁고 우리의 목적지는 그리 드높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만일 그가 저 낮은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한다면, 그의 도덕적인 능력을 제한하고, 욕망을 낮추고, 활동, 영광, 깊고 관대한 감정을 부정하면, 멍청이가 되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 본성의 더 나은 부분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 우리를 고문하고 쫓는 고귀한 동요를 우리의 지식을 확장시키고 능력을 계발하려는 욕망을요. 우리는 운명적으로 그저 행복 추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는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적극적인 발전의 수단입니다.

 

 

정치적 자유는, 예외 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그들의 가장 신성한 이익에 대한 보살핌과 평가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을 넓히고, 그들의 생각을 고무하고, 그들 사이에 인민un peuple의 영광과 권력을 구성하는 일종의 지적 평등을 확립합니다. 따라서,  한 국가가 처음으로 정치적 자유를 정기적으로 시행할 때,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십시오. 모든 계급과 직업의 우리 동포들이 그들의 일상적 노동과 사적 사업의 영역을 떠나, 갑자기 헌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을 보십시오. 거기서 그들은 분별력을 가지고 힘있게 저항하며, 협잡꾼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위협에 용감히 맞서며 고귀하게 유혹을 견뎌냅니다. 보십시오! 순수하고 깊으며 진실된 애국심이 우리 도시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리 동네를 소생시키고 우리 작업장에 퍼지고, 우리 시골동네들을 활기차게 하고, 유용한 농부들과 성실한 무역업자들의 정의롭고 명예로운 마음들을 올바른 감각과 안전장치에 대한 필요로 채우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겪은 악폐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악폐가 요구하는 치유책에 대해서도 똑같이 깨우친 이 사람들은 프랑스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고, 국민적 감사의 수여자로서, 그들의 표로, 30년이 지난 후, 자유의 수호자들 중 가장 저명한 이*의칙에 대한 충정에 보답합니다.

 

 

 

따라서, 제가 묘사한 둘 중 한 종류의 자유를 폐기하기보다는, 제가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그 둘을 합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History of the Republics in the Middle Ages 의 유명 저자[Sismondi]가 말했듯이, 제도들은 인류의 운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만약 제도들이 가장 많은 수의 시민들을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으로 끌어올린다면,  그것들은 제 목적을 더욱 잘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법가의 일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민중이 심지어 만족할 때에도, 해야할 일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도는 시민들의 도덕 교육을 수행해야 합니다. 제도는 시민들의 개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독립을 보장하고, 그들의 일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삼가야 합니다. 제도들은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공적인 일에만 쏟아야 하며 시민들에게 그들의 결정과 투표로 힘을 행사하여 기여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제도는 시민들이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통제와 감시를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이렇게 실천을 통해서 그들을 저 고귀한 기능에 맞게 키움으로써 그들에게 욕망을, 또한 동시에 욕망을 실현할 능력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전에 프랑스 의회인 의회에서 선출된 드 라파예트 후작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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