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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저, 전상인 옮김. 정리 (1)

by 알키비토 2017. 1. 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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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1부 가독성과 단순화의 국가 프로젝트 정리. 



사회에 대한 가독성, 국가의 고전적 기능을 단순화함이 국가 통치술의 핵심.

어떻게 국가는 자기 백성과 그들의 환경을 점차적으로 관리하게 되었을까?

국가의 지적도 자기 능력을 통해 그 자체의 범주로 법적 강제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제도를 창출한다.

 

하이 모더니즘 이데올로기. 과학적 기술적 진보, 생산의 증대, 인간의 필요에 따른 만족의 증가, 자연에 대한 정복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 법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상응하는 사회 질서에 대한 합리적 설계. 비과학적이리만큼 낙관적. 합리적 질서를 놀라우리만큼 시각적이고 미학적인 견지에서 바라봄.

만약 계획이 좌절하거나 뒤틀릴 경우, 모형화; 시범 도시 등을 통해 좀더 쉽게 통제되는 미시적 질서 창조하려고 함.

계획가들이 조직화된 시민과 협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한 하이 모더니즘은 개혁을 촉발할 수도 있었다. 권위주의적 국가가 태동할 토양은 전형적으로 전쟁, 혁명, 공황 그리고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 시민 사회를 약화시킴.

사회에 대한 가독성은 대규모 사회공학을 위한 능력을 제공하고, 하이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열망을 제공하고, 권위주의 국가는 그와 같은 열망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결단을 제공하고, 끝으로 무능한 시민 사회는 그것을 이룩할 수 있는 사회적 지형을 제공한다.

 

설계 혹은 계획에 입각한 사회 질서는 필연적으로 도식적이다. 현실에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기능하고 있는 사회 질서의 어떠한 본질적인 요소도 항상 무시한다. Ex) 생산 과정 성문화될 수 없는 일련의 비공식적 관행과 임기응변에 의존. 공식적 계획은 비공식적 과정에 기생한다.

 

무정부주의자 사회 질서를 창조하는 것과 관련해 명령적이고 위계적인 방식에 반대하면서 상호성 강조.

 

질서의 공식적 체계는 그것들이 간과하기 십상인 몇몇 실행지와 관련된 요소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국가는 주민의 가치와 욕구 그리고 반대를 유토피아적 계획과 권위주의적 묵살을 통해 밀어붙임으로써 실제로 인간의 복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국가 개입에 의해 발생한 수익과 그것이 초래한 비용을 신중하게 서로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과학적 농경이나 산업적 영농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일반을 검토하며 분명히 지적한 것처럼 동질화, 획일성, 격자 그리고 용감무쌍한 단순화의 조직이라는 점에서 대규모 자본주의와 국가는 사실상 똑같은 존재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의 경우 단순화의 비용을 자본가들이 지불한다는 사실 정도다. 시장은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질을 양으로 환원시키며 표준화를 촉진한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다. 오늘날에는 아마도 글로벌 자본주의가 동질화를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것이다. 반면 국가는 몇몇 경우 지역적 차이와 다양성의 옹호자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 공학이라는 근대적 계획의 실패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관료주의적 동질화에 적용되는 것만큼 시장 주도적 표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1부         가독성과 단순화의 국가 프로젝트

공리주의자가 아니라 하이 모더니스트라고 언급한 이유가 없진 않을 터.  자유 보수주의 진영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성 담론, 다원주의, 시장 규제적 국가 수정주의 모델. 전상인 교수의 커리어에 잘 부합하는 책이란 기분이 든다. 확실하진 않다. 읽어본 책이 없ㅇ…. 많은 모든 개혁 계획들이 현실 조건들을 고려한다면 세력 균형 속에 고착된 현실의 힘에 무력화 될 것이란위악적인 생각이 있다.

 

획일적 통제에 따라 균질하게 동일한 간격에 따라 잘 정비된 것을 떠올리면 구소련을 상기하는 자들이 많지만 혹은 전체주의의 잔재로 여기기 쉽지만, 모던함은 말 그대로 19세기 유럽에서 발흥 되었음을 잊을 수 없다.

 

국가와 과학적 삼림: 우화 하나.

국가의 재정 삼림에서는 다양한 용도를 가진 실제의 나무가 목재와 땔감의 양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나무로 대체되고 말았다. 삼림에 대한 국왕의 개념이 만약 공리적이라면, 이는 분명 국가의 직접적인 필요에 국한된 공리주의일 뿐이다. 자연을 체계화하는 데 사용하는 어휘는 전형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드러낸다. 국가가 관료를 통해 삼림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추상화 혹은 공리주의 논리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야가 한층 더 좁다는 것, 매우 정교하게 적용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가 주어진 현실에 대해 그와 같은 논리를 매우 강도 높게 부과한다는 것.

결국 표준적인 나무를 추상적인 존재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바꾼, 말하자면 균일한 수령의 단일 종 삼림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숲은 정돈되지 않은 자연에 단정하게 정리된 과학적 구성을 강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재설계된 과학적 삼림의 통제 환경은 여러 가지 획기적인 이익을 가져왔다.

숲의 죽음 Waldsterben 생태계 붕괴

가상적 생태를 만들기 위한 삼림 복원이 시도되어 뒤섞인 결과를 드러냈지만, 숲을 지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 다양성, 을 여전히 부정.

과학적 상품인 삼림을 대략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은유적 가치는 이를 통해 극도로 복잡한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관계와 과정의 조합으로부터 중요한 가치를 위해 한 가지 요소를 분리시킬 경우 초래되는 위험성을 잘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행정가의 숲이라 부를 수 있는 단순화된 상품 생산 삼림의 허약성 때문에, 그러한 삼림을 조성하는 데 필요했던 막대한 외부의 개입은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데도 점점 더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적 사실, 날것 그리고 요리한 것.

추상화와 단순화를 위해 웅대하고 거대하고 조직적으로 체계화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행정 시스템은 현존하는 어떤 사회적 공동체도 재현할 수 없다.

 

징세 기술과 세력 범위에 미진한 점이 많았지만, 전근대 국가도 근대 국가만큼 세금 징수에 관심을 가졌다. 17 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이 적절한 사례. 행정가에게 특히 편리하고, 토지 소유와 수입에 관한 정보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소금 및 담배 소비세, 통행세, 면허세, 그리고 관작 판매등과 같은 간접세가 조세의 형태로 선호. 변덕스럽게 비체계적. 그 어느 공동체도 부과된 세금의 3분의 1이상을 납부하지 않음. 예외적 수단에 일상적으로 의존. 국가는 국민이 실제 지불할 수 있는 역량에 한층 근접한 수준에서 믿을 만한 세입을 거두어들일 정도의 정보와 행정망을 전혀 갖지 못했다. 졸속적인 계산과 산출량의 수시 변동.

 

과세를 위한 확실한 방법은 국민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징세할 때 그들이 격렬히 저항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측정 및 토지 소유와 관련해 각 지방의 관행은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서 국가가 읽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국가가 아니라 순전히 지방적인 갖가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다양성과 복잡함을 대변했다. 곧 그들의 이해관계는 편리한 약기로 변형되거나 환원되지 않고서는 하나의 행정적 격자망으로 동화할 수 없었다.

 

가독성의 도구 만들기: 대중의 측정, 국가의 측정.

사실 이런 토지 측량의 어려움이나, 도량형 통일에 따르는 세력 상 장애는 한국사 공부를 고딩 때 열심히 하면 굉장히 익숙할 텐데, 사회의 가독성이 올라갈 수록 혹은 측정이 단일화될수록 평등의식이 성장할 배경이 생긴다는 건 약간 논리적 비약이 있게 느껴진다. 65pg 오히려 왕권 확립에 기여하는 수가 많았다. -귀족적은 맞을듯.

공간이 의식을 규정한다거나 상호 영향을 지닌다는 말은 일반론적으론 동의할 수 있으나, 계몽주의와 근대적 심미적 감각이 혹은 지형을 마치 도화지처럼 평평하게 제시하는 조망을 통해 비행은 총체적 비전, 합리적 통제, 공간적 질서에 대한 새로운 열망을 고무시켰다. 상당히 느슨한 직관적 이해가 아닐까. 상호 연관이 없단 건 말이 안 될 테고, 좀 더 명확히 밝혀주는 사례를 제시하면 어땠을까. 오스망(Haussmann)의 파리 재선은 확실히 권력자의 통치 체계가 도시 계획에 따라 어떻게 수립, 강화되는지 잘 알려주는 예시였다고 생각한다.

 

비국가적 형태의 측정 방식은 지방적 관행의 논리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그 다양성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행정적 단일성에 대한 장애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몇 가지 발생론적 양태를 공유한다.

 

초기에 대부분의 측정은 인간적인 규모였다. 지방의 척도는 또한 상대적이거나 서로 필적하는 방식이었다. 최근까지 손목시계조차 드물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대답은 분이 아니라 그 지방에서 의미 있는 단위들로 표현되었다. 지방 특유의 측정 단위에는 특정 행위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직 당장의 필요한 과정에서만 정확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제기하는 해당 지역의 적절한 관심사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측정의 문제를 내포한 질문에 대한 모든 의도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답은 없다. 개개의 측정 관습은 상황적으로,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구속을 받는다.

관습적 측정의 특수성이 경작지에서보다 더욱 분명해지는 곳은 없다.

놀랍도록 다양한 관습적 토지 측정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표면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문자 그대로 다수의 지도를 상상해야만 한다.

 

측정의 정치

모든 측정 행위는 권력 관계의 작동이 뚜렷이 드러나는 행동이다. 근대 초기 유럽의 측정 관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요 신분 집단 사이의 경쟁적 이해관계와 연관해 살펴보아야 한다.

 

측정의 정치에서 상당한 부분은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봉건적인 지대의 가변성이라 부를 법한 것에서 발생했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봉건적 부담액을 직접 인상하는 것에 자주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측정법을 조정하는 것은 동일한 목적을 얻기 위한 우회로를 의미했다.

통치술과 측정의 상형문자

측정의 지역적 기준은 실용적인 필요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수확 패턴과 농업 기술을 반영했기 때문에, 기후와 생태에 따라 변화했기 때문에, “권력의 특성과 계급 특권을 옹호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쓰디쓴 계급투쟁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통치술과 관련해 상상을 초월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측정을 단순화하거나 표준화하려는 노력은 프랑스 역사를 관통해 라이트모티프처럼 반복되었다. 노력의 계속된 재등장은 그 이전의 노력이 실패했다는 확연한 징표.

지방적 측정 관행의 비가독성은 국왕에게 행정적 골칫거리 이상이었다. 비교 가능한 측정 단위가 없는 상태에서 지역의 생필품 가격을 비교하거나 식량 공급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는 피상적인 정보, 소문, 개인적 이익에 입각한 지방의 보고서에 기초해 상황을 맞추어나가야 헸기 때문에 뒤늦게 부적절한 대응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세 형평 문제에는 아예 영향력 미치지 못했는데, 수확량이나 가격과 관련해 비교 가능한 기본적 사실조차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

 

표준화되고 확정된 측정 단위 없이는 효과적인 중앙의 모니터링도, 세심하게 관리하는 비교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측정의 단순화와 표준화

지역의 측정 방식을 확립하고 강제하는 힘은 귀족과 성직자가 흔쾌히 넘겨주지 않을 중요한 봉건적 특권이었다.

 

계량 혁명을 가능하게 한 세 가지 요인 1. 시장 교환의 성장이 측정에서의 통일성 촉진. 2. 대중적인 정서와 계몽주의 철학이 단일 표준화에 유리하게 작용. 3. 나폴레옹의 국가 건설은 프랑스와 그 제국에서 계량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강제.

 

측정의 단순화는 근대 사회의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단순화와 결부된 또 다른 사안이었다. 동질적이고 균일한 시민권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상관성이 굉장히 미약. 4세기 중국. 관료 체제 훨씬 전에 고도로 발달한 동아시아권.

토지 소유권: 지역적 관행과 재정 약기

납세 의무가 있는 개인이나 기관에 필지 단위 세금 부과를 현실화하는 데 큰 여러움. 1. 관습적 토지 소유권에 대한 실제 관행이 각양각색으로 뒤얽혀 있어 납세자와 과세 대상 토지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2. 국가의 재정 관료가 바라는 통합적이고 투명한 토지 관계 시스템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회적 권력.

 

일상적 습속을 기술하는 것은 비로 그것이 법률처럼 보이더라도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왜곡이다. 물론 권력 관계를 포함하는 여러 관습은 새로운 생태적-사회적 상황에 지속적으로 적응해나가는 관행의 살아 있는 그리고 매번 타협이 이루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생각할 대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관행의 성문화는 필연적으로 습속의 유연성이나 기민한 적응성 희생. 구성원이 만족하거나 구성원에게 평등한 것은 아니나 완전히 친숙.

 

관습적인 토지 소유 관계에 내재된 풍부한 다양성을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적어도 자유주의 국가에서 단행된 역사적 해결책은 대체로 개인의 자유 토지 소유권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었다. 초지는 법적 개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법적 개인은 사용, 상속, 매매에 관한 광범한 권한을 가지며, 그 소유권은 국가의 사법 당국과 경찰 당국을 통해 강제되는 균일한 토지 소유 증서를 통해 표현된다.

 

거의 실재했던 협동 조합법.

프랑스 혁명과 공포 정치 시기에 나타난 지방 봉기는 물론 좀더 일반적으로 대담하고 독자적인 농민의 공격성에 직면해 귀족과 비슷한 위협을 느끼게 된 농촌 토지 소유 부르주아 입장에서는 명시적인 협동조합법 Code Ruval 이 신변 보장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패. 대부분 전통적 권리를 일소하고 부르주아 소유권 및 자유 계약권이라는 측면에서 농촌의 소유 관계를 본질적으로 수정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방임적 자유주의가 지주들의 권한 강화하도록 의도한 것처럼 보였다.

공동 소유권의 비가독성

전근대 및 근대 초기 국가는 세금을 부과할 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더 많이 겨냥. 집단적 처벌. 개별 가구 수준 빛 그들의 경작지에 정규적으로 손을 미칠 수 있었던 유일한 징세 행위자는 봉건 부과조와 십일조를 거두는 과정에서의 지방 귀족과 성직자들뿐.

 

조세의 집합적 형태는 일반적으로 지방세와 징집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짓 상황을 고하는 지방 관료의 이익 챙기기라고 볼 수 있다. 지방 관료들은 해당 지역의 인구를 최소로 추산하고 경작지 면적을 체계적으로 저평가하는 한편, 새로운 상업적 이윤을 감추거나 폭풍우와 가뭄에 따른 수확의 손실을 부풀렸을 것이다. 지적도와 토지 등기부의 핵심은 재정 문제와 관련해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국가 재정 수입을 합리화하는 데 있었다.

 

국가가 지방 귀족과 엘리트의 저항에 대처할 의지가 있고 또한 지적 총조사에 착수할 재정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또 다른 장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소유권의 몇몇 공동체적 양식은 지적도 형태로 적절히 표현하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토지 소유의 공동체적 형태에 반대하는 국가의 입장은 그것이 재정적 측면에서 가독성이 없기 때문에 국고 수입상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정확한 관측을 기반으로 삼았다.

 

공동자산이 방대하고 본질적으로 아무런 재정적 가치가 없는 한 소유권의 비가독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동 소유가 드물어지면서 국가 소유인지 개인 소유인지를 따져야 하는 법적 소유권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외부인에 대한 객관적 정보로서의 지적도

국가에게 지적도의 가치는 추상화와 보편성에 있다.

 

확실히 토지 구획과 관련해 면적이나 경계의 위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속성은 그것들을 적용할 영역이 정해지고 측정을 시행한 다음에야 (특히 국가에게) 유의미해지는 법이다.

 

이 그림에서 사라진 것은

지적도는 강의 흐름을 찍은 스틸 사진과 매우 비슷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비현실적이 되므로 반드시 재조사해야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태적인 지도를 그려야 한다. 비록 정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개략적 사실 또한 지속 가능한 징세에 필요한 나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도출되어야 한다.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이 지배하므로 지적도라는 안경 역시 매우 뚜렷이 정의되는 관점 바깥에 놓인 일체의 것을 무시해버린다.

 

변형과 저항

 

지적도는 작성을 지시한 사람들의 권력을 반영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통제 도구이다. 지적도는 당파적이다. 여기서 지식은 권력이다. 18~19세기 세금 투쟁에서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 잘 알고 있었듯이 지적도는 일부에 이익이 되고 다른 이에게는 손해가 되는 종합적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지적도는 적극적이다. 어떤 현실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지적도는- 신세계나 식민지 인도에서처럼- 구세계를 제거하는 데 일조한다. –Roger Kain Elizabeth Baigent <지적도>

 

세무 관료가 현실을 이해하는 공식으로 삼는 약기 방식은 단순한 관측 도구가 아니다. 원리를 통해 자신이 주목하는 사실을 변형시킬 만한 권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EX)  프랑스 집정부 시기에 제정되어 1917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된 창문세. 점차 가능한 한 창문 수를 줄이게끔 설계되고 개조되었다. 재정 손실은 창문당 세금을 올려 벌충할 수 있었지만 농촌 주민의 건강에 미친 장기적 영향은 한 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국가가 강제한 토지 소유권의 새로운 형태는 창문세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었다.

지방 권력과 자율성 상당 부분 파괴 -> 격렬한 저항.

18섹 유럽에서 전국적 토지 조사 사업은 어떤 경우에든 중앙집권화의 첫 단추였다. 지방의 성직자와 귀족은 자신의 조세 권한과 자신이 누리던 면세권이 위협받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평민 계급은 토지 조사 사업을 지방 조세를 강화하기 위한 위장으로 보았을 것이다. 절대주의 시대의 위대한 중앙 집권론자장 밥티스트 콜베르 Jean Baptist Colbert  1679년 좌절. 한 세기 지난 프랑스 혁명 이후 급진파인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Franciois Noel Babeuf  는 완전한 평등주의적 토지 개혁 꿈꾸었으나 역시 실패.

 

우리는 세상을 변형시키는 국가의 단순화 능력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부과된 카테고리를 수정하고, 방지하고, 심지어 전복하는 사회의 능력도 기억해야 한다. 토지 소유의 실제적 사실과 서류상 사실 사이의 간극은 아마도 사회적 혼란과 폭동의 순간에 가장 높아질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지적도 제작은 강력한 국가가 상대적으로 약한 시민 사회에 대해 스스로를 강제할 수 있는 곳에서 한층 더 빨리 그리고 더 포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민 사회가 잘 조직화되고 국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에서는 지적도 제작이 더디고, 때로는 임의적이며 파편적이었다.

 

지적 조사는 공리주의적 근대 국가의 늘어나는 기술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전근대 국가가 질서를 지키고, 세금을 징수하고, 군대를 양성할 정도의 지식 수준에 만족했던 반면, 근대 국가는 물적-인적 자원을 차지하고 그것들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드는 데 점점 더 열중했다. 생산성, 보건, 공중위생, 교육, 교통, 광물 자연, 곡물 생산, 투자에 대한 국가의 관심 증대는 국가 통치의 전통적 목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세계에 수반된 국가의 목적을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었다.

 

국가와 대립항으로 지방 귀족과 엘리트, 일반 민중 그리고 중간계급 까지 나오는데 이를 제외한 국가는 곧 독재자 개인인지, 수도에 있는 관료를 포함한 행정담당 관료 집단인지. 등등 의문이 생긴다. 근대 국가를 전근대 국가의 그저 가독성 높아진 형태로 볼 수 있을지, 역사적인 여러 국가를 포괄하는 정태적 개념으로서의 국가가 성립할 수 있는지 모르겠고, 우선 국가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하는데, 이에 답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당파적일 것이다. 모두 같은 국가로 보는 것의 의의를 짐작하며 살펴볼 때 책이 더 의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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