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남출판사에서 나온, 진석용 씨가 번역하신 리바이어던을 읽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정말 번역을 잘 하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발췌입니다.
발췌하면서 읽는 게 머릿속에 잘 들어와서 하는 것인데, 혹시 저작권상의 문제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엔 제 생각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였습니다만 역시나, 매우 적은 양입니다.
홉스의 운동, 과학등에 대한 인식이 엥겔스의 반듀링론을 연상시킵니다.
헌사
지나치게 많은 자유 주장, 지나치게 많은 권위 주장. 시민적 권력 (교권에 대립하는 세속적 정치 권력) 권좌 그 자체에 대해 추상적으로 논의.
서설
자연은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여 다스리는 기예
인공인간, 리바이어던 (정치체, 코먼웰스, 국가 (state), 키위타스civitas)은 인간의 기예. 자연인을 보호하고 방어할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인보다 더 크고 힘이 세다.
주권(혼), 각부 장관들과 사법 및 행정 관리들(관절), 상벌(신경), 부와 재산 (체력), 인민의 복지와 인민의 안전(업무), 조언자들(기억), 공평과 법(이성, 의지), 화합(건강), 소요(병), 내란(죽음), 약정-신의계약-covenants(천지 창조할 때의 신의 명령)
인공인간의 성질을 서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재료와 제조자는 모두 인간.
지혜는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연구해야 얻어진다. 근데 남 험담이 연구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nosce teipsum)’ 사람의 사고와 정념은 누구나 서로 비슷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언제 사고, 판단, 추론하고, 희망을 품고, 공포를 느끼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타인의 사고와 정념 쉽게 이해 가능. 그러나 정념(욕망, 공포, 희망)의 유사성이, 정념의 대상의 유사성은 아님. 정념의 대상은 기질과 교육에 따라 극히 다양, 지식으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자기 마음과 비교해보고,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사정이 동일한지 알지 않으면, 과신, 불신이 지나쳐 오해하게 된다.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전 인류의 맘을 읽어야.
둘째, 어떤 신의계약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나, 주권자의 권리 및 정당한 권력 또는 군위는 무엇인가, 또 그것을 유지하거나 해체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기독교 코먼웰스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어둠의 나라란 무엇인가?
제 1부 인간에 대하여
제 1장 감각에 대하여
감각은 사고의 근원이자, 운동.
인간의 사고를 우선 하나씩 살펴보고, 그런 다음 연속된 사고(사고들의 상호 의존 관계)를 살펴 보겠다.
대상의 성질의 현상이 각각의 사고, 개념.
하나씩 놓고 볼 때 사고는 보통 ‘대상’(object)이라고 불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물체의 어떤 성질 혹은 우유성(accidents)의 표상(representation)또는 현상(appearance)이다. 그 대상이 우리의 눈이나 귀와 같은 인체기관에 작용하는데, 이 작용의 다양성이 현상의 다양성을 낳는다.
모든 사고의 근원은 우리가 감각(sense)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 감각의 원인은 바깥의 물체 혹은 대상. 이 대상이 감각의 고유기관을 압박한다. 이 압박이 두뇌로 전달되면, 이에 대한 저항 또는 반대압력, 즉 이로부터 해방되려는 마음의 노력이 생긴다. 이 노력은 ‘바깥을 향한 것’이 기 때문에 바깥에 있는 어떤 물질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겉보기’(seeming) 혹은 ‘환각’(fancy)이 우리가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감각할 수 있는’(sensible) 성질들은 그 감각을 일으키는 대상 그 자체에 있지만, 감각 그 자체는 그 물질의 운동수와 같은 수의 압박이 우리들의 감각기관에 가해졌을 때 생긴다. 대상과 심상 혹은 환각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학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본에 따른다. 예컨대, 시각의 원인에 대해 말하기를 보이는 물체가 모든 방향으로 가시적 상, 가시적 자태를 보내고, 그것을 눈에 받아들이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것. 이해의 원인에 대하여도, 가해可解의 대상이 가해의 상, 즉 알려질 수 있는 것을 보내고, 그것이 우리의 이해력에 닿아 이해된다는 것.
제 2장 상상에 대하여
사고의 근원인 감각은 인간 내부의 운동이므로,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 막지 않는 한 영구히 운동한다. 그 운동은 상상, 경험, 꿈, 이해이다.
어떠한 것도 그 자체로는 변화하지 않는다.
스콜라학파는 물체의 운동 원인을 그 물체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한 휴식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물체는 일단 운동을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이 막지 않는 한, 영구히 운동한다.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경우에도, 즉 보거나 꿈꾸거나 할 경우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 상상, 기억 - 대상이 사라지거나 눈을 감아도 흐리지만 남아있는 물체의 상.
· 다량의 기억 - 경험
· 잠자는 동안의 상상 – 꿈
· 허깨비 또는 환영 – 잠깐 동안의 꿈
라틴인들은 이를 심상(image)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여, 상상(imagination)이라 부르고.
그리스인들은 환각(fancy)이라 부른다. 이 말은 나타남(appearance)이란 뜻.
상상이란 쇠퇴하는 감각(decaying sense)일 뿐이다.
외부의 물체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자극 중 가장 지배적인 것만을 감지.
어떤 대상을 감각하고 난 후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심상은 그만큼 약해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끊임업이 변화하여 감각적으로 자극을 받은 부분들을 때에 맞추어 파괴하기 때문.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도 같은 효과.
이 쇠퇴하는 감각 그 자체, 즉 환각 그 자체를 지칭할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쇠퇴한 것, 즉 감각이 희미해지고 오래되고 과거의 것이 되고 만 것을 지칭할 때는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상과 기억은 결국 같은 것인데 고찰의 방법에 때라 이름이 다를 뿐.
다량의 기억, 혹은 많은 것들에 대한 기억을 경험이라고 한다.
상상에는 단순 상상-말, 인간- 과 복합적 상상이-켄타우로스- 있다.
잠자는 동안 생기는 상상은 꿈이라고 한다.
허깨비 또는 환영은 잠깐 동안의 꿈. 과거의 이교도들은 꿈이나 강렬한 환각을 환영이나 감각과 구별할 줄 몰랐다. 현자의 역할은 그런 주장들에 대해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신뢰할 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은 거부하는 일. 이러한 미신적 정령공포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 복종(civil obedience)을 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야 말로 스콜라 학파가 마땅히 해야하나, 오히려 그런 미신을 조장.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만 한다.
· 인간이나, 혹은 상상력을 가진 모든 생물에게 말이나 기타 임의의 기호에 의해 일어나는 상상 - ‘이해’
인간이나, 혹은 상상력을 가진 모든 생물에게 말이나 기타 임의의 기호에 의해 일어나는 상상은 일반적으로 ‘이해’(understanding)이라고 불린다. 인간은 특이하게도, 사물의 이름을 연결하고 조직하여 만든 긍정, 부정 등의 언어로 개념이나 사고를 이해한다는 점.
제 3장 상상의 계속 또는 연속에 대하여
· 사고의 계속 (consequence) 또는 연속 (train)이란 하나의 사고에 다른 사고가 연속되어 일어나는 것. 마음속 담화 (mental discourse)
모든 환각은 우리들 내부의 운동이며, 감각 속에 만들어진 그들 운동의 자취. 그리고 감각 속에서 연속하여 일어나는 운동은 감각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된다. 따라서 하나의 생각이 생기고 그 생각이 지배적이 되면, 운동물질의 응집성에 의해 그 생각을 잇는 생각이 생겨난다.
사고의 연속 또는 마음속 담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유도되지 않은, 의도가 없는, 일정하지 않은 연속 사고.
둘째, 어떤 욕구나 의도에 의해 규제된 연속 사고.
어떤 것을 원하거나 혹은 두려워하여 생긴 인상은 강렬하고 영속적. 수단, 수단의 수단.
Respice finem (목적을 돌아보라) 매사에 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모든 사고를 그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도록 집중하라는 것.
· 두 가지 규제된 연속 사고. 수단 탐구, 결과 탐구.
하나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원인 혹은 수단을 탐구하는 경우. 인간 동물 둘 다 해당.
또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로인해 어떠한 결과나 영향이 나타날 것인가를 탐구. 다시 말해서, 그것을 획득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 오직 인간에게만 해당. 일종의 호기심. 감각적 욕정 이외의 다른 정념. 마음속 담화는 어떤 의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 탐구 또는 발명의 기능을 하게 된다. 라틴어의 통찰(sagacitas)과 예지(solerita)가 바로 현재 결과의 원인, 과거 원인의 결과 탐구. 탐색의 한 방법, 시공간 제한하고 반복적으로 생각. 회상(remembrance) 또는 상기. 라틴어로 (reminiscentia) 행동을 재검사.
예견(foresight), 분별력 (prudence), 선견지면(providence), 지혜(wisdom) - 행위의 결과를 알고 싶음. 하지만 미래는 섭리의 영역이므로, 추정에 불과한 분별력만 실현 가능. 그러나 연구를 통해 어떤 결말의 선행사건인, 징후(signs)들을 많이 알 수는 있다. 경험이 풍부하면 분별력이 커지고 신중해진다. 과거에 대한 추정. 이 모두 추측.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에게 본성적으로 깃들어있는 마음을 쓰는 데에는 오감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부터 설명하려고 하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능력들을 연구나 노력에 의해 획득되고 중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이러한 능력들을 습득하는데, 이 모든 것은 단어와 화법의 발명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마음의 운동에는 감각과 사고와 사고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능력이라도 화법과 방법(methods)의 도움을 받을 경우, 그 능력은 향상된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구별되는 이유도 바로 이렇게 향상된 능력에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모두 유한한 것이다. 무한하다는 말은 그 말이 적용되는 대상 자체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개념인 것이다.
제 4장 언어능력에 대하여
문자는 과거의 기억을 계승하고 온 지구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인류를 결합시켜주는 유익한 발명이다.
언어는 인과관계를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원인과 결과에 각각 ‘이름’을 부여하고 양자를 관련시킬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이름(name), 혹은 명칭(appellation)과, 그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언어(speech)의 발명.
이 언어로서 사람들은 사고를 기록하고, 과거의 사고를 회상하고, 또한 상호간의 이익이나 교제를 위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다. 언어가 없었다면, 사람들 사이에는 코먼웰스도 사회도 계약도 평화도 없었을 것.
· 언어의 효용(일반, 특수)과 남용.
- 언어의 일반적 효용.
언어의 일반적 효용은 마음속 담화를 입말로, 사고의 연속을 낱말의 연속으로 바꾸어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전(移轉)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편익을 가져다준다.
하나는 사고의 연속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회상을 위한 징표(marks) 또는 부호(notes) [자기 자신]
또 하나의 효용은 다수가 동일한 낱말들을 사용할 경우 그 낱말들의 관련과 순서에 의한 자신의 관념이나 사고를, 혹은 욕망이나 공포를, 혹은 다른 어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기호(signs) 역할. [자신과 타자]
- 언어의 특수한 효용
언어의 특수한 효용은 첫째, 현재 또는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해 심사숙고한 끝에 알게 된 원인을 기록하는 일과, 현재 또는 과거의 어떤 일이 초래하는 결과나 영향을 발견하여 기록하는 일. 이것이 모여 학문(Arts)이 된다. 둘째, 자신이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 서로 의논하거나 가르쳐주는 일. 셋째, 자신의 의지와 목적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상호간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일. 넷째, 재미나 장식, 자신이나 타인을 즐겁게 하는 일.
- 언어의 남용.
첫째, 의미가 일정하지 않은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사고를 잘못 기록하는 경우. 자기 자신 기만. 둘째, 말을 비유적으로 하는 경우. 타인 기만. 셋째, 자기의 진정한 의지가 아닌 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공언하는 경우. 넷째, 서로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말하는 경우.
· 고유명사와 보통명사.
세상에는 보편적인 것이 없다. 그 이름이 적용되는 대상은 하나하나가 다 개별자로서 하나뿐인 것이기 때문.
하나의 보편적 이름으로 다수의 사물을 지칭하는 이유는 그 사물들의 성질이나 우유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외연의 대소를 불문하고, 마음속으로 상상한 사물들의 귀결에 대한 계산을 이름들의 귀결에 관한 계산으로 바꿀 수가 있다. 경험을 일반적 용어로 기록하면, 하나의 개별자에서 발견된 결론은 하나의 보편적 법칙으로 기록되고 기억된다.
언어가 사고를 기록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것은 수사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두 개의 이름이 결합하여 하나의 결론 또는 단정(affirmation)이 되는 경우가 있다.
Ex) ‘인간은 생물이다.’ 후자, 즉 생물이 의미하는 바가 전자, 즉 인간이 의미하는 바를 모두 의미한다면 이 단정 혹은 결론은 참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짓.
참과 거짓은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언어의 속성이다. 언어가 없다면 참도 거짓도 없을 것이다. 예상이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오류’는 있을 수 있다.
· 정의의 필요성
진리는 우리가 단정을 내릴 때 이름을 올바른 순서로 나열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용하는 모든 이름에 대하여 그 정확한 뜻을 기억하여 그에 따라 배치를 해야 한다.
기하학에서는 용어의 의미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용어에 대한 정의가 있은 다음에야 기하학적 계산이 시작된다. 정의가 잘못되어 있을 경우, 계산하면 할수록 오류는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이름을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이 바로 언어의 첫번째 효용이며, 이렇게 할 때에만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정의의 무재에 언어의 최초의 남용이 있고, 이로부터 온갖 거짓되고
어리석은 학설이 생겨난다. 올바른 과학적 지식이 제일 위에 있고, 그릇된
학설이 맨 아래에 있다면, 그 중간쯤에 무지가 있다. 인간의
타고난 감각과 상상력은 좀처럼 불합리한 일을 하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을 갖지 못 한 사람도 타고난 분별력만 가지고 있다면, 잘못 추론하거나
잘못된 추론을 믿거나 하여 그릇되고 불합리한 일반적 규칙에 빠져든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은 고귀한 상태에 있다. 제 5장, 73
말은 현자의 계산기로서 현자는 오직 말로써 계산할 뿐이다. 동시에 그말은 어리석은 자들의 화폐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말이 누구의 말인가에 따라, 즉 그 말을 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토머스 쯤 되는 학자라면 오로지 그 원위에 의해 말의 가치를 매긴다.
·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 계산에 넣어 생각할 수 있는 것.
라틴인 금전계산서 ‘라티오네스’(rationes), 계산을 ‘라티오키나티오’(rationcinatio)라고 불렀다. 항목(items)를 노미나(nomina) 즉 이름이라고 불렀다. Ratio는 계산하는 능력.
그리스인 로고스-언어-추론. 추론행위를 삼단논법(syllogism)이라고 부름. 하나의 진술을 다른 진술과 연결하여 요약을 얻어내는 것 의미.
· 이름의 네 가지 항목
- 첫째, 어떤 사물은 물질이나 물체로 설명될 수 있다.
물질 혹은 물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름. Ex) 살아있는, 움직이는, 이성적인, 뜨거운, 차가운, 조용한 등.
-
둘째, 어떤 사물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우유성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말로 설명되거나 혹은 고려될 수 있다. 사물 자체의 이름이 약간 변화, 굴절된 것. 예를 들면 살아있는->‘생명’,
움직이는->‘운동’ 뜨거운 -> ‘열’
어떤 물질 혹은 물체가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유성 혹은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름들을 추상명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 이름들이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물질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추출된 것이기 때문.
- 셋째, 상상의 이름들.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모양, 색깔을 인식하여 그 사물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상상에 속하는 것이다.
- 넷째, 우리는 이름 그 자체와, 이름들을 결합하여 말하는 방법들에 대하여도 이름을 부여한다. Ex) 일반적 특수적 다의적은 이름에 대한 이름들, 단정 의문 명령 서술 삼단논법 설교 연설들은 화법들의 이름들. 긍정적, 부정적.
그 밖의 모든 이름들은 아무 의미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Ex) 무형의 물체. 둥근 사각형. 부어진 덕.
· 이해
어떤 말을 듣고서 그 말속에 들어잇는 단어들이 일정한 결합과 배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생각을 알았을 때 바로 그 말을 이해했다고 한다.
즉 이해란, 언어에 의해 생겨난 개념. 언어가 인간에게 특유한 것이라면, 이해도 역시 인간에게 특유한 것.
이름이란 것이 [어떤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그 대상에게] 부여된 것이고, 우리의 감정도 결국은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가 동일한 사물을 놓고 서로 다른게 생각할 경우에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의 본질이 동일한 경우에도 기질이 서로 다르고 편견도 저마다 각각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이 정념에 따라 다양한 색조로 채색된다. 그러므로 추론을 할 때는 말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낟.
말에는 우리가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의미 이외에 화자의 성격, 성향, 흥미도 같이 들어있다. Ex) 미덕과 악덕 – 지혜/ 공포, 정의/ 잔혹, 아량/낭비, 우둔/침착
그러므로 이러한 언어들은 어떻나 이성적 추론에서도 진정한 기초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제 5장 추론과 과학적 지식에 대하여
추론(reason)이란 각 부분을 더하기하여 합계를 생각하는 일, 혹은 어떤 액수에서 다른 액수를 빼기하여 나머지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추론 행위를 언어에 적용하자면, 각 부분의 이름의 연결관계로부터 전체의 이름을 생각한다든가, 또는 전체 및 일부분의 이름으로부터 다른 부분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이다.
논리학자는 말의 연결관계에 대해 더하기와 빼기를 가르친다. 두 개의 이름을 합하여 하나의 단정을 만들고, 두 개의 단정을 합하여 하나의 삼단논법을 만들고, 여러개의 삼단논법을 합하여 하나의 논증을 만든다. 또한 하나의 삼단논법의 합계, 즉 결론에서 어느 하나의 명제를 빼면 다른 하나의 명제가 남는다.
· 추론(reason)이란 우리의 사고를 표시(marking)하고 표명(signifying)하기 위해 합의된 일반명사들의 연결관계를 계산하는 것.
어느 누구의 추론이라고 해서, 혹은 여러 사람의 공통된 추론이라고 해서 확실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다툼이 있을 때에는, 중재자나 재판관의 추론을 바른 추론으로 해야한다. 자신이 남보다 현명하다 생각하면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리라 강력히 요구. 이건 자기 마음속을 지배하는 정념이 있을 때마다 그 정념 하나하나를 올바른 추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으뜸패 다 쓰고 자기에게 가장 맣은 남은 패를 으뜸패로 사용하겠다 우기는 일.
· 추론의 효용과 목적은 정의와 의미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귀결에서 다른 귀결로 이행하는 데 있다.
정의와 의미에서 시작하지 않고, 저자를 신뢰하여 그가 제시한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믿고 있을 뿐.
· 오류와 불합리
‘추측’이 현실과 다르면 오류(error) 혹은 기대에 어긋난 것(decep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로 ‘추론’하여 얻은 일반적 추론이 그릇된 경우, 이것은 불합리(absurdity) 혹은 무의미한 말에 속한다.
‘자유 의지’, 방해물의 방해를 받는 것 말고는 자유로운 ‘자유’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즉 그런 말은 불합리한 것이다.
· 발견한 귀결들을 모아서 일반적 법칙으로 만들 줄 안다.
인간의 또 다른 우월성.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의 결과나 영향을 탐구하는 능력)
이런 것을 정리(theorem) 또는 격언(aphorism)이라고 한다.
· 불합리라는 열등성.
자신이 사용하는 이름에 대한 정의를 내리거나 설명을 하고 나서 추론을 시작해야.
불합리의 원인들
1.
방법의
결여.
정의에서부터, 즉 용어의 확립된 의미에서부터 추론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
이것은 마치 하나, 둘, 셋이라는 수사의 값을
알지 못 하고 계산하는 것과 같다.
2. 물체에만 어울리는 이름을 우유성의 이름으로 삼거나, 혹은 우유성에만 어울리는 이름을 물체의 이름으로 삼음. Ex) 신앙이 주입되었다. 신앙은 물체가 아님. 주입은 물체만 가능.
3. 우리 바깥에 있는 물체의 우유성의 이름을 우리 몸에 있는 우유성의 이름으로 삼음. 인식을 대상의 고유한 것의 발현으로 착각. Ex)색이 그 물체 안에 들어가 있다.
4. ‘물체의 이름’을 ‘‘이름이나 언어’의 이름’으로 삼음. 보편적인 것들이 있다, 어떤 생물이 속이다. 특수-보편
5. ‘우유성의 이름’을 ‘‘이름이나 언어’의 이름’으로 삼음. 어떤 것의 본성을 그 정의라하거나, 사람의 명령은 그의 의지이다.
6. 은유나 비유, 기타 수사상의 표현.
7. 아무의미없는 기계적 언어 사용. Ex) 실재적, 초실체화, 합체한다, 영원한 현재.
이러한 불합리의 원인들을 피하면, 쉽게 불합리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은 그 추론능력이 생래적으로 유사하며, 좋은 원칙을 지키기만 하면 훌륭하게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과학
이런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추론은 감각이나 기억처럼 타고나는 것도 아니요, 또한 분별력처럼 경험만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능력은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첫째, 적절한 이름을 부여한다. 둘째, 이름이 부여된 요소들에서 출발하여 훌륭하고 정연한 방법으로 이름들을 결합하여 주장을 세운다. 여러 주장들을 결합하여 삼단논법으로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당면한 문제와 관련된 모든 이름들의 연결관계에 대한 지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라는 것이다. 감각이나 기억이 사실에 관한 지식, 즉 과거의 일이나 취소할 수 없는 일에 관한 지식이라면, 과학은 하나의 사실과 다른 사실과의 관련 또는 의존관계에 관한 지식이다. 이런 지식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부터 장래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수 있다.
인간 정신의 빛은 명료한 말이다. 그러나 우선 정의가 정확해야 모호함이 제거되고 깨끗해진다. 추론은 그 발걸음이며, 과학의 증진은 그 길이며, 인류의 복지는 그 목적이다. 반대로 은유나 무의미하고 모호한 말은 도깨비불과 같은 것이다. 그런 말에 기초한 추론은 무수한 불합리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며, 그 결과는 논쟁과 선동과 모욕이다.
· 분별력과 학식의 차이
경험이 많으면 분별력(사려-prudentia)이 생기고, 학문(과학적 지식)이 깊으면 학식(sapience)이 생긴다.
과학적 지식의 표지는 확실한 것도, 불확실한 것도 있다. 그러나, 분별의 표지는 모두 불확실하다. 어떤 일에서든지 그에 관한 확실한 과학적 지식을 쌓지 않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자연적 판단력을 버리고서 책에서 읽은, 예외 많은 일반적 문장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으로서 보통 현학이라고 하여 비웃음거리가 된다.
Leviathan, Part One Of Man, Ch 6- Ch 10. (E 2) (0) | 2016.03.03 |
---|---|
리바이어던, 제 1부 인간에 관하여, 제 6장 ~ 제 10장 (한 2) (2) | 2016.03.03 |
Leviathan, Part One Of Man, Ch 1- Ch 5. (E 1) (0) | 2016.02.28 |
Leviathan, Introduction by C.B. Macpherson. (E 0) (0) | 2016.02.26 |
21 세기 자본 - 서장 (0) | 2016.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