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탄원 형식의 담화 분석, 영토적 사법권과 디지털 성범죄- 손정우

by 알키비토 2020. 5. 5. 23:09

본문

- 탄원 형식의 담화 분석, 영토적 주권(사법권)과 디지털 성범죄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의 부친이 탄원서(국민청원)를 공개적으로 제출했다. 그의 탄원서에는 띄어쓰기, 맞춤법 오류와 비문이 많지만 논리와 수사적 전략의 측면에선 완성도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이를 간단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미국의 범죄자 인도 요청을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인도 이후 한국이 취해야하는 조치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1. 손정우 부친은,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대로, “못배우고,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변명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변명 중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를 수행하는 중에 어떤 변호가 가능한지 잘 알고 있으며 이를 탄원서에 적절히 사용했다. 그는 'IMF', '이혼', '가난', '교육 받지 못함' 등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이 공통의 경험을 한 바 있어 그 어려움에 대해 비교적 쉽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개념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공통 고난 경험에서 끌어낸 공감을 통해, 손정우가 이 사회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일원이라 주장한다. 그는 이런 정상성을 범죄자에 대해 동정을 불러일으켜 죄값을 경감시킬 수 있는 서사적 장치로 활용한다. 그가 탄원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테다. 손정우가 재판 받는 내내 썼을 것이다. 손정우가 ‘1년 6개월’이라는, 시민들의 정의 감각에 반하는, 형량을 받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간 그러한 탄원/호소 서사를 구축하고 그걸 반복적으로 활용해 오며 다듬어왔을 것이다. 현재 국민들이 보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제출되고 피드백 받아 손정우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다듬어진 최종판이다.

2. 범죄 내용에 대해, 그 중함에 대해 자신도 자신의 아들인 손정우도 "몰랐지만" 계속 뉘우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피력함과 동시에 다른 중범죄들과 구분짓고, 법적 허점을 파고든다. 알지못했던 범죄 행위에 대해 사죄드리는 게 '진심'일 수야 있다. 진심이든 아니든 '진심된 사과'란 문구는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단순히 반복적으로 그 단어를 탄원서에 섞어 넣음으로써 '진정성'을 표현한다. 반복된 탄원/호소문 쓰기로와 그만큼 축적된 피드백을 통해 손정우의 부친은 충분히 진정성 표현이 효과적인 호소 전략임을 숙지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여럿의 공분을 산 대목이다) "그렇다고 강도 살인 강간 미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라고 했다. 손정우의 부친은 손정우가 저지른 범죄의 종류(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그간의 판례가 그의 현재 형량을 늘이기에 부족하단 것을 인지하고 있고, 이를 적극 환기시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3. 손정우 부친은 탄원서에서 국내 범죄자를 타 주권국에 인도하는 것이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미국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상, 자국민의 법익 보호의무를 지닌 미국 법무부가 한국에게 범죄자 인도를 요청하는 것은 정당하다. 물론 한국이 그러한 미국의 송환 요구를 거절하는 것 역시 정당할 수 있다. 손정우 부친은 1) 손정우가 '미국 언어와 법리적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단 점을 송환의 부적절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법 앞에 선 자가 법이 시행되는 언어를 전혀 이해 못한다면 법 집행의 정당성에 훼손되므로, 언어 이해 불가능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간단히 해결된 문제이다. 통역사가 있으면 된다. 더욱 그 해결이 복잡한 근거는 2) 그가 이미 처벌을 받은 상태란 것이다. 탄원서에서 손정우 부친은 미국 송환 요청을 수락한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묻는다. 이는 타당한 질문이다. 법률불소급의 원칙도 있지만, 무엇보다 손정우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한국에서는 이미 처벌을 모두 받은 상태이다. 같은 죄로 다시 벌하는 것도, 그가 재판을 받는 중에 사회의 정의 감각이 급격히 변하였다고 형량을 재검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손정우 부친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여죄를 한국에서 받게”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손정우는 “여죄”가 없고, 따라서 "중형"을 받을 리도 없다.

그러나, 손정우가 저지른 범죄 피해자들의 피해가 막중함 깨닫고, 또한 그의 범죄 유형이 일종의 전형성을 확립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사회에 크게 위협적임을 깨달은 시민들이 한국에 있다. 그리고 전혀 사법적으로 처리된 바 없는 피해자들이 또 그들의 공동체가 전세계에, 특히 미국에 있다. 손정우와 같이 디지털 성범죄라는 새로운 범죄 유형을 마땅히 취급할 유의미한 선례가 없는 경우, 타국인의 침해된 법익을 형사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으므로, 범죄자를 예외적으로 해당국에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인도 요청을 한국이 승인하는 사건이 반복하여 일어날 경우, 사법권을 필수적으로 하고 핵심적으로 하는 주권이 침해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주권 국가의 영토 경계에 한하지 않는 피해를 야기한다. 따라서 이 주권 침해의 가능성을 지닌 범죄자 인도 요청은, 한국이 디지털 성범죄를 사법적으로 처리할 "국제적 기준에 준하는" 항목들과 체계를 마련할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내외에 성범죄 피해자를 양산하고, 전세계에 위협이 되는 범죄자를 보호하는 대신,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고, 시민들의 정의관을 반영하는 사법적 처리 방안을 속히 갖추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롯트  (0) 2020.07.08
비기 말고 영지  (0) 2020.07.08
Belief, Truth, Interpretation  (0) 2020.06.01
Trump and Organization  (0) 2016.11.15
어느 한 생존자의 다짐- 강남역의 여성혐오 범죄에 관하여  (0) 2016.05.1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