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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by 알키비토 2022. 7. 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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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개봉 첫날에 보고 왔다.

 

스포주의

 

당신 때문에 붕괴되었다 = 당신을 사랑한다. 

너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다. 

 

스토리는 매우 고전적인 정통 멜로라 할 법했다.  절간에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산 하나를 나눠 쓴 채로 어색한 헛소리와 고백을 번갈아 하는 해준과 반면 느긋하게 해준 옷 주머니 뒤지며 여유부리는 서래를 보여줄 땐 너무 귀여워서 그만 '핏핏 칫칫 유치해.. '하면서 웃게 됐다.  "붕괴"로 정의하다니 가히 "품위있는" 남자다운 선택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박찬욱 감독은 금지된 사랑 (불륜, 나이차, 혈연, 동성애 등)에 환장한 인간들이 무엇을 어떻게 욕망하는지 잘 아는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난봉꾼은 철저하게 금사의 욕망에서 배제된다. 불륜이 낭만적이려면 화목한 부부의 안 그럴 것 같은 점잖고 청결한 남편이 몇번이고 마음을 고쳐먹고도 어쩔 줄 몰라 "마침내" 자신이 상대 때문에 "무너지고 깨어졌음"을 말로써 고백해야 한다. 감독이 서래를 향해 자동차 휠을 꽉 잡고 악섹을 밟을 때 해준의 손가락에 낀 결혼 반지가 반짝 빛나는 걸 비추는 걸 보고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다. <박쥐>에서는 품위를 성직자라는 직업에서 끌어 빌려 왔다면,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의 품위는 박해일의 마스크와 피지컬 그리고 목소리에서 나온다. 또한 상대가 있어야 잠들 수 있는 불면증 환자는 멜로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될 수준의 설정. 박해일 때문에 아무래도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연애의 목적>이다. 

 

금지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설정이 너무 극단적이면, 예컨대 <올드보이>에서 근친처럼, 설정에 너무 큰 비중이 생겨서 다른 영화적 장치에 몰입하기 어려운데, 유부남 형사와 불쌍한데 예뻐서 처량한 피의자라는 설정으로 그 수위가 비교적 낮다. 더군다나, 연이은 죽음들로 이어지는 비극 끝에 남편 살해를 계기로 만난 형사와 사랑에 빠지고, 스스로 그의 미결사건으로 남아 기억되겠다는 욕망도 박찬욱이 그간 내세운 욕망 덩어리의 여캐에 비하면, 특히 <박쥐>에서 김옥빈이 맡은 '태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의 소박한 욕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헤어질 결심> 속 서래는 여러모로  <박쥐>의 태주를 연상시킨다.  자살 충동 있고 자해하는 "불쌍한" "예쁜" 그리고 차가운 (청록색 원피스를 입는) 여자. 남편을 잘못 만나 기구하고 박복한 그래서 오히려 남자를 끌어모으는 여자. 그래도 한결 부드러워진 설정 때문에 <헤어질 결심>에서는 스토리나 설정이 아닌 다른 것들에 계속 눈길이 간다. 의도한듯 하다. 

 

감독이 박찬욱인 게 잘 드러나는 점은 자주 보여줬던 기법이나 미장센 같다. 아무래도 부엌의 구도나 색감, 인물이 한 씬에 배치할 때  거울이나 유리 등의 빛 반사를 통해 한다든지, 장면 전환 간 소품이 잘 쓰인다든지, 산과 바다라는 대조된 공간 속 안개 낀 도시란 설정과 죽은 이까지 합세한 삼자구도로 진행되는 시간 이동 (서래 전남편 - 서래 - 해준)한다든지, 해준이 생선 손질하며 든 식칼이나 박정민이 든 가위 때문에 드는 자주 쓰는 기법인 일상의 도구로 자아내는 섬뜩함. 서래 옷 질감이 벨벳인 것이랑, 절벽에서 음악이나 구도가 히치콕의 <버티고>가 생각난단 점 등등. 

 

또 하나의 볼거리는 디지털 매체 활용이라 생각했다. 이미 다 스마트폰으로 채팅하고 녹음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직까지도 드라마보다 특히 보수적인 영화에서 디지털 매체가 극의 흐름이나 소통을 좌우하는 것으로 등장하지 않는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스마트워치 녹음이나, 폰 운동 기록, 메세지, 번역기, 위치추적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전면으로 내세워 영화 상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게 하고, 극중 인물간 소통에 핵심적인 매체로 등장해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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