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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제라드 다이아몬드 <독후감>

by 알키비토 2016. 8. 29.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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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는 다르다. 서평과는. 독후감 수준의 글.


사실'어제까지의 세계'를 읽고, 주변에 다이아몬드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만큼의 감동을 못 받아서, ‘총,균,쇠’ 읽기를 미뤄뒀다. 근데 저번 학기비교정치학 수업에 빈번하게 인용되는 걸 보고, 읽어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이번 방학의 공부를 가볍게 시작하는 맘으로, 일주일에 읽으려던 책인데, 게으름 탓에 완독까지 이 주가 걸렸다. 운 좋게 중고서점에서 아주 싸게 한국어 판을 구해서, 영어공부, 번역 공부도 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원서를 읽으며 주제나, 핵심 제제에는 빨간 밑줄을, 중요 설명을 검은색으로 밑줄을 그었다. 해석이 머릿속에서 매끄럽게 되지 않는 부분에 보라색으로 하이라이트 하여, 해당 부분만 번역을 참고하는 방식으로 독서를 진행했다. 텍스트에 쓰인 단어와 구문은, 아주 소수의 전문 용어를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굉장히 평이한 편이다. 정말 교과서처럼 써져 시간이 많다면 도전해볼만하다.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현재의 (인종, 문화, 국가 등) 여러 불평등에 대해 선의를 갖고서,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하려는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그가 몇 개의 논증에 있어서 적용이나 고증이 미흡했다고 해서, 글의 큰 이론이나 논리 전체가 무용한 것처럼 취급되어선 곤란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도는 그 다음의 보다 더 과학적이고 완결적인 시도를 격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의 경우에는 “당연히 유목보단 정착을 해야지,” 라고 상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 부분을 읽고나선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아는 하나의 방법이 지구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법칙은 아닌데 너무 안일하게 간주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가 근본적 원인들을 너무 지정학적 지리 환경적 요소에 제한하고, 문화 언급을 의도적으로 기피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의도를 상기한다면 적절한 서술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문화 관련하여선 상대주의든, 뭐든 다른 책들이 넘쳐나니 말이다. 나는 어설픈 문화 상대주의자들이 유난스럽게 양비론을 꺼내드는 꼴을 노골적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인종차별적 언사를 하는 꼴보다 더 지켜보기 힘겨워하는 사람이다. 따져보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스스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은 "선하다는" 굳은 확신을 가진 자들이 너무 많다. 따라서,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본격적 논의에 앞서 거론한 반론들, 예컨대, “민족 지배 과정을 설명하는 건 곧 정당화이다,” “현재 상태를 역사적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유럽중심적이다" 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안 된 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에 대해서 충분히 해명했다. 


제라드 다이아몬드는 1, 2부에서 ‘각각의 문화권은 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고, 그간 그에 대한 답으로 으레 간주되던, 인종차별적 해설들이 명백히 과학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그릇되었음을 주장한다. 대신에, 그는 3부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크게 세 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식량 생산 (작물, 가축) 기술의 확산 (동서 축, 지형), 인구 (크기, 밀도)이 바로 그 이론들이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을 서로 상이한 오스트렐리아 뉴기니 반-대륙의 차이점, 중국의 중화와, Austronesian Expansion, 신대륙 발견, 아프리카의 인종 다양성 등의 현상에 적용해본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건 제목을 “총, 균, 쇠” 로 지은 점? 왜일까. 본문에서는 총, 균, 쇠는 오직 proximate reasons이고, 근본적인 이유는 지리 환경이라고 밝히는데,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를 골라내려는 저자의 기믹인가. 너무 제목이 길어져 상품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인가? 사실 총, 균, 쇠 역시도 상품성을 고려한다면 그리 잘 지은 제목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독서를 미루게된 이유 중 하나가 상식 수준에서 문명간 차이 떠올리면 총, 균, 쇠를 안 떠올릴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 대충 아는 걸 사서 읽어 굳이. 이런 느낌을 준달까


무튼 읽지 않기는 아쉬운 책이긴 하다ㅡ 번역은 상대적으로 읽기 매끄럽게 잘 쓰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느낌상으로는 의역이 많은 편이라 판단되는데, 크게 문제가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상당히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모든 장의 제목들을 마치 논문 제목처럼 딱딱하게 바꾼 것은 상당히 아쉽다. 검증할 수 없는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미국적 글쓰기는 문학적 혹은 개인 체험적 도입부를 학문적 내용 및 성과들과 잘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 제라드 다이아몬드 역시 그러한 연결을 하려고 노력을 상당히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크다. Yali란 구체적 인물의 질문으로 책을 연다든지,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을운운한다든지, 호주가서 자기 예상 외로 기후에 적응 못 하고 열사병 걸려 환각 증상 보인 경험을 얘기한다든지 등등. 이런 흥미를 끄려고 유지한 여러 장치들을 짧막한 요약문과 함께 딱딱한 제목으로 대체한 것이다. 음, 아무래도 한국의 문화와 직결되지 않으니 이해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신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내가 본 번역은 ‘개정증보판’인데, 누락된 문단을 하나 발견했다. 영문판으로는 chapter 16. How China Became Chinese 의 316 페이지, 둘째 문단이다. “As for food production’s more sinister by-product of…” 로 시작한다. 별도의 설명이 없어, 당황하고, 장의 마지막까지 혹시 문단 배열을 바꾸신 건가하고 찾아봤는데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해당 문단의 이론의 경우  굉장히 최신의 것에 속해서 다이아몬드가 신판에 추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답하며, 이번 하드커버 신판 번역본에는 추가 되었을 지 모른다고 하며 찾아봐 주기로 했다. 한국에 있다면 바로 서점에 가보는 건데, 미국에 있어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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